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0

어머니와 딸만의 비밀이다

by 유연 은정원


기숙사에는 이층침대가 네 세트 놓여있고 창가에 긴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기차역에서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같은 방 학우 여섯 명이 테이블 주위에 모여 각자의 고향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학우들은 자리를 만들어주며 말린 과일이며, 땅콩, 육포 같은 간식거리를 나누어주었다. 그러곤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데 모두 끝에 ‘고맙다’는 말을 붙였다.

황급히 나가느라 출입구 바로 앞 침대 윗칸에 캐리어를 던져놓은 것이, 모두가 꺼리는 자리를 발 빠르게 자처한 격이 된 것이다.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자리라는 이유 외에도, 내 침대의 아랫칸은 매트리스가 없는 빈자리라 캐리어와 세면도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늘 복작댈 예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나에겐 입구나 안쪽 자리나 매한가지 였다.

나는 학우들의 간식을 사양하지 않고 양 손을 뻗으며 “간식 이게 다야?”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는 다음 날 저녁 교내의 제3식당에서 룸메이트 회식을 하기로 하고, 각자 침대로 흩어져 필요한 일들을 했다.

나는 침대 한편에 앉아 캐리어를 펼쳐 당장 꺼내 놓아야 하는 물건들, 이를테면 한겨울이 되기 전까지 사용할 이불과 옷가지, 세면도구, 옷 소매가 더러워지고 빨리 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팔에 끼는 토시와 양말 몇 켤레, 집게가 달린 개인용 조명, 며칠 전 왕푸징 거리의 대형 서점에서 산 시집 몇 권, 작은 베개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베개포 등을 옆에 늘어놓았다.


캐리어 뚜껑을 닫기 전에, 겨울옷들 밑에 푹 파묻혀있는 ‘한국 공책’을 꺼내어 아버지의 기억이 모두 잘 있는지 확인했다. 공책을 바닥으로 밀어넣을 때, 캐리어 벽면에서 뭔가가 손목에 닿았다.

겨울옷을 걷어내어 보니, 안쪽 벽이 볼록 튀어나와 있고 구석에 있는 줄도 몰랐던 지퍼가 보였다.

열어보니 100위안짜리 지폐가 150장씩 들어있는 묵직한 빨간 봉투 세 개와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어머니 글씨였다.



은주 크면 주려고 매달 서너 장씩 모았다.

외국에서도 찾을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 저금해라.

어머니와 딸만의 비밀이다.



*



학교는 그야말로 활기가 넘쳤다. 전통 복장을 고수하는 소수민족 학우부터 중국 대도시에서 온 학우들, 한국과 서양,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들의 천차만별 옷차림은 린화 싼웬 사람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오래지 않아, 중국, 외국 할 것 없이 더운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밝고 환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옷을 제일 먼저 입고 다니는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 대도시의 학우들이라는 것, 중국인 중에서도 나 같은 시골 출신들만이 필기를 할 때 팔토시를 낀다는 것, 드라마 속 스타일이 아닌 청바지 위에 ‘아웃도어’라고 부르는 남색이나 검은색의 등산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활기를 느끼는 건 눈만이 아니었다.

귀 역시 중국 각 지역의 다양한 억양과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들, 교정 곳곳에서 들려오는 외국어와 한국어를 들어내느라 분주했다. 다양한 언어가 넘쳐나는 와중에, 희미하게라도 산둥성 억양이 들리면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갔다.

근처에서 한국어가 들려올 때도 그쪽으로 귀가 커졌다. 특별한 내용을 염탐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온 곳의 말투와는 전혀 다른 그 다정하고 보드라운 억양이 듣기 좋아서였다.



입학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신입생의 ‘군사훈련’이 시작되었다.

신입생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줄을 맞춰 기차에 타 베이징 외곽의 창핑(昌平) 훈련장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일정한 시간에 기상과 취침을 반복하며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운동장을 뛰고, 구령과 호각 소리에 맞춰 여러 가지 동작을 익혔다.


10일째 되는 날은 ‘실전 훈련’을 했는데 각자 상황판단에 따라 공격이나 대피를 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적군에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싸이렌과 호루라기 소리, 지령 통보와 함께 곳곳에 피어나는 가짜 연기가 공포감을 조성하기 안성맞춤이었다.


11일째 되는 날 밤엔, 자원을 하거나 선발이 돼서 춤과 노래 연습해온 학우들이 ‘퇴소 전야제 공연’ 무대 위에 섰다. 우리는 무대를 에워싸 음악에 맞춰 방방 뛰었다. 오직 지평선만 있는 창핑 들판이 곡선으로 요동치도록 환호성을 지르며 군사훈련의 마무리를 자축했다.


다음날 종료행사와 기념촬영을 끝으로 우리는 학교와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여전한 모습으로 그곳에 머무는 캠퍼스의 활기와 소리들이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날, 본관 광장과 교훈 비석, 교학 건물들을 지나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내 안에 구겨져 있던 무언가 조금씩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던 걸 기억한다.

그 느낌은 가슴 한복판에서 시작해 어깨와 목으로 따뜻하게 퍼져나간 후 눈앞의 풍경을 반짝거리는 듯 바꿔놓았다.


신분이 드러날까 봐 늘 웅크리고 있던 한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전국 각지와 세계 수십 국에서 온 학생들 사이에서 힘차게 걷고 있는 장면.

그것은 내 드라마의 어디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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