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2

내가 니 이 말을 들어줄라고

by 유연 은정원


세 번째 토요일엔 아주 이른 시간에 무단웬에서 스님을 만나 택시를 타고 판쟈웬(潘家園) 골동품 시장으로 갔다.

스님은 노점과 가게마다 들러 ‘관음보살’과 ‘포대화상’ 그림을 보고 맘에 드는 걸로 골라 몇 장씩 샀고, 먹을 갈 때 사용하는 연꽃 모양의 구리 연적과 연꽃무늬가 새겨진 문진도 몇 개씩 샀다.

모두 선물용이라고 했다. 내가 맡은 일은 스님이 찾는 물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


두 손 가득 물건을 사고 판쟈웬에서 나와 이번엔 마롄따오의 찻잎가게로 갔다.

세화가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우려 주었다. 차담을 나누다가 스님이 세화에게 물었다.


“보살님은 베이징에 오니 뭐가 제일 좋아요?”

“돈 버는 게 제일 좋슴다. 언니한테 용돈 받아서 쓸 때는 조금 눈치가 보였거든요.”


세화는 ‘요’자로 끝나는 말도 잘해서 꼭 한국 사람 같았다.

스님은 나를 바라보며 농담인 듯 말하였다.


“소연이도 시골 선생님 된다고 애쓰지 말고 빨리 돈 벌어라. 부모님 눈치 그만 보구로.”


나는 아무 말 않고 웃기만 하는데, 세화는 차를 따르며 스님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했다.


“스님. 왜 소연이한테는 반말하고 제한텐 보살님이라 함까?

그리고 야는 내랑 달라요. 야가 그 촌구석에서 얼마나 공부를 잘했냐면, 베이징사범대 장학생이에요.

국가에서 키우는 아란 말임다. 4년 동안 공부하고 고향 돌아가서 공립학교에서 일할 인재임다.

야는 우리 린화시 조선족 핏줄의 자랑이에요.”


스님은 껄껄 웃으며 그러냐면서 차를 마시고, 다른 차도 좀 보자고 말을 돌렸다.

스님은 선물용 찻잎도 종류별로 여러 개 샀다. 짐이 많아 내가 스님이 사는 학교 기숙사까지 같이 옮기기로 했다.


스님은 기숙사 방에 짐만 집어넣고 나와서는, 한국인이 모여 사는 왕징(望京)이라는 동네에 있는 북한식당 ‘옥류관’에 가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북한식당’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손사래를 쳤다.

스님은 우리 동포가 만든 냉면 맛 좀 봐야 안 되겠냐며, 한국 가기 전에 같이 하는 마지막 식사이니 거절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조바심에 말이 성급하게 나왔다.

“저는 그 식당에 갈 마음의 준비가 아니 됐슴다!”


스님은 장난으로 알아듣고 식당에 가는 데 무슨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냐며 당장 옆에 있는 택시를 잡아탈 기세였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정말 못 가겠슴다.”라고 거듭 말했다. 내 기색을 심상치 않게 여긴 스님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스님과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스님의 학교에서 출발해 우리 학교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한 것이 무단웬까지 와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진 스님과 나는 사거리에 보이는 맥도날드로 들어가 햄버거와 콜라를 주문했다.

스님은 출가한 이후 30년 만에 햄버거를 처음 먹는다고 말했다.


“니는 피자도 처음인데, 햄버거는 묵어봤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린화 시내에 ‘컨더지’가 있어서 두 번이나 먹어봤슴다.”


스님은 뭐가 재미있는지 껄껄 웃었다. 한국 사람들이 ‘컨더지’를 KFC라고 부른다는 건, 그날 안 거다.


허기를 채운 후 스님과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무단웬 공원 입구로 들어가 물가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11월 중순, 저녁 시간이 지난 후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난생처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나를 고백했다. 내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를.


전에도 그랬듯이 왜 이런 말까지 하게 되는지 모를 이야기들이 가슴 속 우물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스님은 다 듣고 나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너무 놀랐겠네. 내가 하필이면 북한식당을 가자고 해가.”


초겨울 공원엔 바깥 도로에 차 지나가는 소리와 간간이 머물다가는 바람 소리만 있을 뿐이었다.

옷깃이 날렸지만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스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도 고생했고, 이 말 하느라 또 고생했다.”

“제가 왜 스님께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지 저도 모르갔슴다.”

“괜찮다. 내가 니 이 말을 들어줄라고 여기까지 와 있는 건지 누가 아나.”


스님은 다시 한번 나에게 진짜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 주 전에 그 질문을 듣고 나서 줄곧 해답을 찾고 있던 나였다.


“저는, 드라마 대본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슴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자 스님이 차분하고도 시원스레 말을 받았다.


“잘했다! 찾아냈으니 된 기야. 내가 기도할게.”


거기서 스님과 작별 인사를 했다.


1년 후 이곳 아닌 다른 곳에서 다시 깊은 인연으로 이어지게 될 줄 까마득히 모르는 채, 우린 마주 서서 합장하고 서로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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