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3

연휴엔 집에 돌아와야 하겠다

by 유연 은정원


겨울방학을 맞아 5개월 만에 린화 싼웬으로 돌아왔다.

기차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싼웬에 내리자, 그새 대도시의 리듬과 빛에 익숙해졌는지 돌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고, 초저녁 어둠도 깊은 밤처럼 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의 틈. 이곳엔 그것이 있다.

한겨울 북풍마저 잠시 멈출 때면 일순간 대지 위로 둥실 떠오르는 거대한 적막이.

베이징에선 깊은 새벽에도 이런 소리의 틈을 만날 수 없다.


디에와 웨이가 현관에서 나를 맞아주었고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나를 껴안는 어머니의 팔과 얼굴이 많이 여위어있었다.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고 디에는 어머니가 병원을 안 간다고 ‘화를 냈다’. 3일에 한 번 동네 중의사가 들러 어머니의 맥을 짚고 약재를 주고 갔다.

그해 처음으로 어머니는 마당이 아닌 거실에 앉아 설날 폭죽을 구경했다.


한 달 후 내가 베이징의 학교로 돌아오기 직전, 어머니는 100위안짜리 지폐 20장이 들어있는 빨간 봉투를 손에 들려주며 ‘베이징에 가면 려권을 만들어 두라’고 말했다.

그러곤 ‘날이 풀려가니 내 감기도 곧 다 나을 거다, 일체 걱정 말고 너른 땅에서 해보고 싶던 것들을 실컷 하며 지내라’고 기침을 참으며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며 ‘곧 나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노력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새 학기 개강이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통화할 때마다 괜찮다는 말만 일관하는 어머니의 수화기를 뺏어 든 디에가 “노동절 연휴엔 집에 돌아와야 하겠다.”라고 나에게 말했을 때, 요동치는 충격이 아닌 진공 같은 적막이 찾아왔던 것이다.


여름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향그러운 늦봄의 오전, 대도시의 교정 한가운데에서 아득히 멀어지는 듯한 적막이 나를 둘러쌌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교문 밖으로 나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도시 중심 쪽을 향해 걷다 보니 지난 학기 한국 스님과 갔던 호하이 호수공원의 입구에 와있었다.


문득 갈 곳이 생각난 나는 호수를 따라 전력 질주하여 반대편 출구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용허궁으로 갔다. 한국 스님과 두 번째 토요일에 갔던 사찰이다.

나는 법당마다 다니며 스님이 해줬던 설명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법당이 따로 있던 곳이 여기였는지 다른 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


출구 없는 백지 안을 빙빙 헤매던 그때, 하늘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그 파동을 타고 자동차 소음과 사람들의 목소리, 바람 소리, 음악 소리, 대도시의 소리가 한꺼번에 되돌아왔다.

나는 진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꺼내진 사람처럼 숨을 헉헉 몰아쉬었다.


거친 숨이 점차 차분해지자 나는 눈앞에 보이는 법당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눈을 감았다.

마주 모은 두 손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어머니뿐이었다.



돌아온 ‘고향 집’.

디에와 웨이가 현관에서 나를 맞아주었고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나를 보고 담뿍 웃었다.

부쩍 자란 웨이가 나에게 달려와서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디에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몸이 앙상하고 눈이 퀭했다.

나는 주저앉을 것 같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다가가 어머니 곁에 앉고, 두 손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감쌌다.

손바닥에 느껴지던 피부와 뼈의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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