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4

by 유연 은정원


이제 가장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노동절 연휴가 끝났지만 베이징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야기, 병원에 가지 않는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한 이야기,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된 디에의 이야기가.


새벽마다 어머니의 기침과 신음, 디에의 성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직 응석받이인 만 열한 살 웨이는 내내 내 방에서 같이 잤다.


나는 노동절 연휴가 끝나 다시 등교를 시작한 웨이의 아침 식사와 숙제를 챙겨주고 어머니를 돌봤다.

디에는 이른 아침 농장에 나갔다 점심시간이면 돌아와 오후엔 집에 머물렀다.

적화가 아직 남아있어 당분간 상주할 수 있는 인부를 두 명 더 구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가자는 디에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자, 내가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내 손 위에 손바닥을 포개 놓으며 말했다.


“송환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병든 몸으로 송환되는 기야.”


어머니는 혹시 모를 신분증의 ‘문제’를 염려하고 있었다.


“은주야. 손 놓고 볼 수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은 네가 만든 게 아니다.

내가 겁이 많아져서 그런 기야. 우리가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런 기고.

기러니 네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 그리고 나 아직 눈을 감지 못해.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머니는 나에게, 우리가 디에와 세상에 말하지 못한 것들을 이대로 영원히 땅속에 묻어놓고 중국인으로 살아가겠는지, 이제 어머니도 없을 세상천지에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베이징의 학교까지 모두 포기하더라도 남조선으로 가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얼음강물을 건너는 건 네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네가 선택할 수 있다.”


웨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와의 대화가 여기서 중단되었다.


나는 ‘린화’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어머니’라는 구심점이 있기에 나의 세계 안에서 유의미함을 알고 있었다.


장학금 수혜자로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오면 공립학교 교사로서 의무복무기간을 채우는 도중 배우자를 만나 결혼과 출산을 하게 될 것이고, 의무기간 이후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사 생활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어머니가 없는’ 린화에서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베이징의 학교를 포기하는 건 차라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놓기 어려운 대상은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며 ‘누나 이불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웨이도 아니었다.

웨이는 어머니와 내가 없어도 고모를 포함한 이곳 사람 모두에게 사랑과 대접을 받으며 잘 자랄 것이다.

곧 사춘기를 지나 ‘훗날의 웨이’가 되어 언젠가 어머니와 나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지금의 내 선택을 이해해 줄 것이다.


그러나 디에.

단 한 번도 모국어의 ‘아버지’나 ‘훗아버지’라는 말로도 떠올려본 적이 없는, 나와 어머니를 진심으로 대해준 중국인 아버지. 나의 디에.

우리가 곧 그의 마음을 찢어놓을 것이, 처음 같이 간 시장에서 계란지짐을 보고 울었을 때처럼 막막하게 사무쳤다.


내 의사를 들은 어머니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고백을 디에에게 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시내에 나가 ‘남조선 사증’ 즉, 한국 비자를 신청하라고 했다.

3주 후 비자가 부착된 여권을 받으러 나가기 직전, 어머니는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표와 한국행 비행기표를 사라’며 돈을 쥐어주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싼웬 시장 입구를 지날 때 문득, 장만승과의 통화 말미마다 아버지 소식을 물었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대답이 무엇이었든 선택은 하나였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나는 린화를 떠난다. 어쩌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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