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강물을 건너온 소녀 2부 _15
가장 마음이 부서지는 게 뭔지 아니?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내 손에 들려있는 기차와 비행기표를 확인한 후 ‘잘했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농장의 동남쪽 모퉁이에 있는 버드나무 이야기를 했다.
단번에 그 나무가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날 밤 어머니가 붙잡고 울었던 그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나무와 울타리 사이에 놓여있는 돌을 치워 흙을 파면 ‘깡통 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상자를 꺼내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각별히 잘 챙기라고 말했다.
흙을 30센티쯤 팠을 때 ‘깡통 상자’의 뚜껑이 보였다. 그것은 디에가 나에게 처음 사준 미제 초콜릿 세트가 담겨있던 상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미제 초콜릿이 아닌 중국 제과회사가 따라 만든 유사품이었다.
나는 ‘똑같이 너무나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디에는 무척 실망하여 고모에게 칭다오에서 올 때 ‘꼭 진품으로 사와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고모가 그것을 사 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으로 돌아와 상자를 열어 열 겹 넘게 감싸진 비닐을 다 걷어내고,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꺼내어 어머니가 만들어둔 하늘색 면주머니 속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어머니는 그것들이 ‘네가 북조선에서 온 아이라는 걸 증명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오후, 웨이가 아직 하교하기 전이었다.
빨래를 널고 있는데 디에가 마당으로 나와 거실 창문 앞에 놓인 테이블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빨래를 다 널고 디에에게 다가가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았지만, 디에는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소란한 침묵이 지나고 디에가 꺼낸 첫마디는 질문이었다.
“언젠가 네가 딱 한 가지 용서해 달란 것이, 어젯밤 네 엄마가 내게 한 이야기니?”
디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지금은 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후 굵은 눈물방울이 흐르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 디에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디에의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 주었다.
디에는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꺽꺽 소리를 내며 울었다.
덩치 큰 남자 어른이 자신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우는 장면은 속을 헤집어놓기 충분했다.
잠시였지만 한국에 간다는 나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지나갔다.
디에가 복받치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절규했다.
“가장 마음이 부서지는 게 뭔지 아니?
처음은 그래,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가족으로 산 게 몇 년이야?
그 사실을 밝히면 내가... 내가...! 너와 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와 네 엄마는 지금까지도 나를 믿지 않은 거야.
나를, 믿지 않은 거라구!
조선족이 아니라 조선인이라고 밝히면, 서류가 아닌 나에게서도 다른 사람이 되니?
니 디에는 정말 상심이 너무 크다. 난 정말 마음이 다 부서져서 못 견디겠어!”
겨우 말을 마친 디에는 집 뒤편에 있는 농자재 창고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뒷모습...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걸음걸이...
어지러웠다. 눈 앞의 풍경이 내 몸속에서 쑥 빠져나와 아득히 멀어져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디에... 그런 게 아니에요...
소금같은 변명은 눈물에 녹아버려 볼을 타고 흘러내릴 뿐,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