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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가 Jun 20. 2019

그래서 당신이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십니까?

금융업에 대한 단상 (1)

  SNS에 떠돌아다니는 글을 한 편 읽었다. 본인이 보험사에 영업사원으로 처음 입사하여 지금까지 이루어온 성장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참 눈물 없이 보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 아, 그런데 이제는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은 것도 같다. 지금까지 정말 많이 노력한 점은 알겠다. 그 과정 속에서 눈물 흘릴 일이 많았고, 서러운 일도 많았고, 이제는 당신이 원하던 목표의 어느 정도를 달성한 것도 알겠다. 그런데, 그래서 도대체 당신이 그 노력을 통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다는 것인가? 정말 떳떳하게 그 노력에 대해 오직 자부심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가끔은 이렇게 쏘아붙이고 싶다.



당신이 지금 이루어낸 것들은 타인의 피눈물을 승화시켜 만들어낸 것은 아닌가요?



  보험설계사(FC)들의 주 수익모델은 당연하지만 보험 영업을 통해 발생한다. 이 '영업'이라는 행위가 진정 필요한 고객만을 대상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자본주의 무한경쟁체제의 이미 과포화된 보험시장에서 올바른 영업만 이루어지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기에 무분별한 보험 가입 유도부터 시작해 이미 가입된 보험을 불필요하게 재가입시키는 일이 다반사고, 변액보험이나 비과세 저축성 보험 등 장점만을 내세워 고수익 투자상품인 것 마냥 둔갑시켜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케이스가 그 유명한 '변액보험'이다. 변액보험은 '보험'이라 칭해지지만, 포트폴리오 운용 성과에 따라 받는 금액이 변하는 일종의 투자상품이라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펀드인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10년간 유지했을 때 비과세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설계사들은 이 '비과세 혜택'만을 운운하며 소비자들을 홀려 변액보험을 팔아넘겼다. 변액보험이 생긴 이례 지금까지 무려 850만 건에 달하는 양이 판매되었고 수백조 원에 달하는 돈이 모였다. 그런데 이 변액보험 상품의 7년 평균 유지율이 30%밖에 되지 않는다. 10년을 유지해야 비로소 유일한 장점인 '비과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70% 이상의 고객들이 이를 포기했다는 거다.


왜 이 사달이 났을까?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하다. 사업비 명목으로 가입을 권유한 설계사가 약 15%가량의 선취수수료를 가져간다. 애초부터 15%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니 아무리 펀드가 대박이 나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계속해서 수수료만 빠져나가니 계좌는 깡통이 된다. 여기서 펀드 운용실적조차 좋지 못하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하지만, 설계사들은 상품 가입을 권유할 때 높은 선취수수료나 중도해지 손실에 대한 부분은 말하지 않거나 흘려 넘긴다. 물론, 모든 보험설계사 분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자격을 갖추고 정직한 영업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가 정도(正道)를 따랐다면 위와 같이 7년 내 70%가 손해를 보며 가입한 상품을 해지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설계사들의 금융상품 악용의 피해자는 언제나 무고한 시민들이다. 잘못된 금융상품 가입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눈물이 모여 보험설계사들의 실적이 되고, 마세라티가 되고, 롤렉스가 된다.

이는 비단 보험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 변질된 금융투자업계의 본질에 대해 묻고 싶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나 쓰여있을 법한 '금융기관의 순기능' 따위의 진부한 글을 떠나서 진정으로 묻고 싶다. 모두에게, 그리고 나에게.


도대체 금융업 종사자들은 사회에 무엇을 기여하는 걸까



  트레이더 시절부터 정말 오래도록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주식, 선물, 외환 등 다양한 상품을 매매하는 일'이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사회에 도움이 될까? 나에게는 솔직히 말해 합법적으로 남의 지갑에서 나의 지갑으로 돈을 빼오는 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도무지 내가 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에서 생산성을 지닌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제도권 금융사에 PB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용사는 운용보수와 성공보수가 존재하지만, 판매사의 경우 판매 시에 발생하는 일회성 수입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금융상품을 고객들에게 홍보해야만 한다. 펀드에서 ELS, 신흥국 채권/펀드, ETF, 양매도 ETN, 해외펀드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부각시키고 판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떠한 일이든 대체로 사회라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한 톱니바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내가 세계를 이루는 정상적인 부품 중 하나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씻어 내리기 위해 행한 게 사회초년생,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스터디, 강의 등을 시작한 일이다. 금융 지식이 절실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필요로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사회에 무언가 기여하는 듯한, 자기만족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해외에서 은행 PB 업무를 내려놓고 교육이 필요한 이들과 직접 소통하고,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다 보니 이전에 비해서는 조금 더 생산성 있는 삶을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질된 금융업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은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


이러한 개인적 고뇌의 과정들은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고민으로, 혹은 불필요한 윤리의식 과잉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금융가에 만개한 모럴해저드에 대해 경계할 책임이 있다. 그동안 하이리스크의 하이'리턴'은 고스란히 금융가에 돌아갔고, 하이'리스크'는 언제나 사회가 떠안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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