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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가 May 17. 2020

오만과 불안

트레이더로 살아낸다는 것 (2)

  돈을 다루는 가장 최전선에서 매일같이 전쟁을 치른다. 9시 30분이 되는 순간.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전쟁터에는 총성이 울려 퍼지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긴장한다. 서로 뺏고 뺏기는 싸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합법적인 그라운드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며 누군가는 지갑을 두둑이 채우고, 누군가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다른 누군가는 그 시체더미를 파헤치며 떨어진 동전 한 닢을 찾는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소수점 단위까지 자신의 승패가 숫자로 쓰여있다. 숫자에는 자비가 없다. 인정(情)도 없다. 그저 정량적인 하나의 수치일 뿐이다. 숫자에 거짓을 덮어 씌워보아 봤자 그저 구차한 변명 일색이 될 뿐이다. 자신의 패배를 궁색하게 포장해보았자 한없이 더 초라해질 뿐이다.

  

  돈을 잃으면 죽고 싶고, 돈을 벌어도 삶이 지옥 같은 건 매한가지다. 삶은 불가피하게 고난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어쩌면 흔들리는 나의 삶을 가장 확고하게 지탱해주는 근본 인지도 모른다. 금융업에 몸을 담고 지난 수년간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낼 수 있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변하였고, 입을 수 있는 옷이 달라졌고, 살 수 있는 집이 바뀌었다. 주변을 이루는 사람들이 달라졌고,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눈도 변하였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 내 자아의 무궁한 빈곤뿐이다. 제적 궁핍은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부는 절대적인 숫자로 이루어진 개념이 아니다. 계좌에 찍힌 잔고의 자릿수가 늘어난다 해서 나의 부가 늘어나지 않는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삶을 한 단계 진보시킬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되고, 내가 닿지 못한 더 높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로서 나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무궁무진하게 가난해질 수 있다.


그러한 부의 특성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진보할 수 있었다. 탐욕은 인간이 눈부신 진화를 이루게 한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미국의 문학가 에밀리 디킨스는 성공이 그렇게 달콤한 이유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말했다. 인간은 언제나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때 차오르는 희열을 느낀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나는 타인과 나의 위치를 비교하며 내 자아를 정의 내리고자 하는 속물의 삶을 살아간다. 세상 모두가 내 아래인 것처럼 내려보는 선민사상과 오만 뒤에는 부정할 수 없는 깊은 공포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내가 언제고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에 부응하는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불안, 지금까지 힘겹게 쌓아 올린 것들조차 한 순간에 아스라져 버려 다시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다. 그렇게 불안했기 때문에 더 노력했고, 예민했기 때문에 더 기민하게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한판 크게 딴 뒤에도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가 총이라도 들이댄 듯 매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긴장과 압박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때로는 큰 수익을 취하고 나면 먹구름 속 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자주빛 노을과 에메랄드 색 바다에 둘러싸인 조용한 섬으로 긴 휴양을 취하러 가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다시 시장으로 돌아와 내 자산과 미래를 건 베팅을 이어나가며 생계를 건 모험을 계속해야만 했다. 때로는 몇 판, 아니 단 한 번의 베팅으로 엄청나지만 위태로운 부를 쌓기도 하고 때로는 찰나의 선택이 애써 쌓은 탑을 모조리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적절한 리스크 배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의 굴레를 끊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라는 사실을 안다. 카지노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가진 칩을 다 잃는 수밖에. 그리고 가진 칩을 다 잃게 되면 그 뒤는 싸늘한 죽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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