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들이 먼 과거의 일로 지나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열정을 가지던 많은 중요한 일들은 차갑게 식어버려 의식 밖으로 사라져 간다. 일상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고, 하루하루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도 너무 많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 망각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결코 마모되지 않는 추억이 있다.
매일을 그런 추억 속에 파묻혀 지낸다. 마치 지나간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내 인생의 모든 특별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며 매일을 힘차게 시작하려 노력하지만, 역설적이게도동시에 매일같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시간은 잔잔한 바다처럼 조용하게 파도치고 매일 새벽이 밝으면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불안정한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내일이 오면 그 내일은 과거가 되어버리고 다시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매일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고 하루하루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기만도 바쁘다. 시간이 흐르고 그 많던 사념들이 과거가 되어 미래에 더 큰 걱정과 싸우고 있다면 그 힘들고 죽을 것 같았던 과거의 기억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퇴색되어 기억에 남는다.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이 그렇다. 지루함으로 점철된 삶은 너무나도 평온했던 시절로, 쓰러질 듯이 힘들고 고단했던 순간들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삶으로 기억되어버린다. 오늘도 새로이 마주하는 수많은 걱정과 사념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기억은 내 편견 어린 시각으로 퇴색될 수밖에 없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무슨 사진을 그리 많이 찍냐 한 소리 듣기 일쑤지만, 멋쩍게 웃으며 계속 셔터를 누른다. 사진 속에 담긴 그때를 회상하며 되감아보는 소중한 추억 속의 그리운 정경들은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때 당시의 기억들을 다시 잘 살펴보면, 분명 그렇게 좋은 일만 가득하진 않았다. 사진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때로는 외롭기도, 우울하기도 했고,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그 순간 사진 그대로의 정경만을 기억 한켠에 남겨둔다. 카메라가 물체를 필름에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것처럼 보고 싶은 기억 그대로만을 새겨놓는다. 그렇게 나는 이기적으로 추억을 기록한다. 살면서 가끔씩 시선을 향할만한 밝은 곳 하나쯤은 마음에 갖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