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첫 글자
작고 포동한 손에 폭 싸인 연필
느릿한 춤을 추면
꾹꾹 눌러 그린 거친 선이
아래에서 위로
밖에서 안으로
제멋대로 미끄러져
앙 다문 입술에 걸린 사랑스러움
머리 한번 쓰다듬으면
눈 맞춤 한 번에 다시 힘을 내는 너
자음 하나는 어찌나 큰지
받침이 무너질 것 같네
모음은 어찌나 기다란지
기우뚱한 벽을 만들어 버렸어
잘했다 잘했어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앙실방실 웃음으로 화답하는 저녁
구깃구깃하게 지어진
너의 글자들을 한 데 모아
식어가는 가슴에 고이 접어 넣고
시름이 깊어 글 한 줄 쓰기
괴로운 어느 밤에 펼쳐놓고
또박또박 읽으면 좋겠다
요즘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유치원에서 매일 단어를 하나씩 전달해 집에서 쓰게 하는 숙제 아닌 숙제가 있는데 여간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다. 원래도 가르치는 데 젬병이라고 생각은 해왔지만 백지 같은 아이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일은 예상보다 엄청난 고역이었다. 실랑이 끝에 한 획을 겨우 긋고 나면 딴 소리를 해대고 겨우 진정시켜 가르치려 하면 금세 일어서서 폴짝댄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발음의 체계를 이해하고 탁 읽어낼 수 있는 눈이 뜨이는 그 순간.
유치원을 다니다 보면 언젠가 한글을 깨치겠지만 그 감격적인 순간, 어쩌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버릴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내가 제일 먼저 두 눈에 담고 싶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배움을 겪어가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언어, 한글을 배우는 것은 특별하지 않은가. 아이에게 가슴이 따스해지는 문장과 마음에 햇살이 되는 아름다운 표현들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리고 엄마는 어쨌든 글품쟁이로 살아왔노라 아이에게 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