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리고 씨

씨 그리고 시

by 시지프의 아내

시 읽어 줄까?
좋아요 엄마
수박에도 씨 있잖아요

시를 읽다

씨 안에 들어앉았다

거친 껍질을 깨쳐야
닿는 숨겨진 진실처럼
가만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잘고 무른 마음들처럼
가운데 커다랗게 박혀
칼 끝도 파고들지 못하는
단단한 신념처럼
모든 것이 된 최초의 이야기

달콤한 과육을 탐하려
무심히 찍어내 버려진 씨앗을 끌어안고

누군가는 싹을 틔우는데 골몰하는 법


이건 말이야

무명씨의 파종에

덩그러니 세상에 추락했어도
어슴새벽 쓴 이슬을 마시고
느닷없는 억수비를 견디며
이 작고 반짝이는 햇살을 만나서야
무성함을 꿈꾸게 된
어느 풀 한 포기의 노래란다





아이가 아주 갓난쟁이 었을 때, 그러니까 세상을 향했던 분주함이 멈추고 둘 만의 행복한 지루함이 나를 뒤덮었을 때 그저 나를 위로하고 싶어 아이에게 시를 읽어주던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를 이야기하니 씨를 떠 올릴 만큼 아이는 부쩍 자라 내 옆에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많겠지만 순진무구하게 뱉어낸 아이의 언어를 붙들고 새삼 삶을 반추해보곤 한다.

어느 평범한 저녁이 나에게 묻는다. 너의 씨는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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