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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의미학 Feb 19. 2017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 유감

당신은 개인주의 하면 어떤 것이 떠오릅니까? 

'당신은 개인주의 하면 어떤 것이 떠오릅니까?' 


누군가 이런 질문을 묻는다면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기 전과 후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이전이라면 '개인주의는' 단순히 나 자신을 더 보호하는 것, 권리를 지키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을 떠올리면 미국에 머물 때 옆 회사의 친절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로버트라는 사람이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선 보다 광범위하면서도 포괄적인 의미로서 '개인주의'를 야기한다. 작가가 언급하듯이 단순히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닌 진정한 사회를 위한 개인주의에 대해.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양옆에 사람이 앉는 게 싫어서 구석자리를 찾아 맨 앞칸까지 가곤 한다. 제주도 송악산에 처음 간 날, 둘레길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에 흥겨워 목소리 높아진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무리를 보는 순간 바로 절경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사람 없는 중산간 마을만 한참 걷다 온 일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다 (이하 생략) 그런 나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살 수는 없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낳는다. 이 책은 그것들의 산물이다"


이 책은 서문이 참 매력적이다.어려운 내용일 수 있는 책의 전제를 아주 쉽게 작가 개인 삶을 언급하며 목적을 분명히 해주는 서문.


"고민의 출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 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성취하여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이하 생략) 많은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이하 생략)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만든 집단주의를 아주 다양한 사례로 강하게 꼬집는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남들과의 경쟁, 남들 보기에 번듯한지, 어떤 급인지가 실체적인 중요성을 가진 집착이 심한 사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출발점과 끝이 이 문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개인주의란 단순히 이기주의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고, 나아가 사회를 위한 개인주의를 의미한다. 치열한 경쟁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될 수 있는 사회. 그로 인해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 가질 여유를 찾고, 개인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공동체를 일궈내는 것. 그런 부분을 작가가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그리스적 전인교육은 노예제의 기반 위에 귀족들에게 적용되었던 혜택이다. 음악, 미술, 체육에 웅변, 논출, 뛰어난 외국어 능력 등 중산층 이상 가정의 뒷받침 없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경쟁하기 힘든 분야의 능력을 자꾸 대입제도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벌써 신분 이동이 어려운 쇠퇴기의 사회가 되어가는 징표 아닐까 싶어 두렵다" 


그가 입시제도에 대해 언급할 때 공부하나만 잘해서는 돈이 없는 사회 계층은 살아남기 힘든 요즘 시대를 비판하고, '공부' 하나로 성공하는 시대를 옹호하는 부분에서는 좀 아쉽다. 위의 말처럼 높은 비용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다양한 재주를 요하는 대학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건 맞지만 국영수 중심의 '공부'라는 잣대가 우리를 경쟁의식에 몰아넣고, 철학적인 사고를 방해했다는 부분은 조금 간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것이 집착적인 경쟁의식을 낳은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어떤 대학처럼 4년 내내 다 함께 인문학을 배우고, 토론하고 졸업하는 식의 플랜을 내놓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의견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문유석 판사)는 정말로 솔직하고, 대담하다. 이 글은 틀림없이 일관성 있게 다른 여느 에세이처럼 자기 말만 뱉는 것도 아니고, 일부 계발서처럼 우리를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를 위해 개인이 잘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누구보다도 다양한 식견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보기 드물 정도로 강렬한 영화를 봤다. <위플래시>다. 재즈 드러머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싶은 젊은 음악도와 정신적 폭력까지 동원하며 그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광기 어린 음악 학교 교수의 이야기다 (이하 생략) 그렇게 몰아붙인다고 다 경지에 오르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경지에 오르는 이도 많다. (이하 생략)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나는 저만큼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걸까? 미치지 않고는 못한다는데 라는 식의 자기계발 강박증으로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고, 유해한 감상법이라고 본다"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내성적인 이들은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사실 중후반으로 가면서 주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서 초반의 긴장감과 흥미는 덜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개인과 사회가 올바른지에 대해 합의점을 찾고, 사고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심도 없고,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고, 주변에서 큰 기대를 받는 건 부담스럽고, 호감 가는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내 일에 대해 내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해내는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심지어 가족으로 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이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다. 


나도 사람을 정말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하루 중 일부는 혼자 카페에서 책 읽거나 공부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을 좋아하고. 커리어적인 성장보다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커리어를 얻어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부럽지 않다. 


내가 부러운 것은 늘 혼자 무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극받고, 성장하고, 잘 해냈던 지인들. 다만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중대하게 할 만큼의 머리와 용기가 부족하기에 생계를 유지하되 여러 가지 플랜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이런 나를 보면 누군가는 비난 섞인 조롱을 쏟아낼 수도 있다. 


한 가지를 성공시킬 자신이 없으니 미래에 여러 가지 자잘한 직업을 갖고 싶다. 그래서 내가 추구할 수 있는 플랜의 일들을 많이 실천하고 싶다. 일부는 실천했고, 일부는 말만 하고, 하지 않는 것을. 그건 언젠가 드디어 내 단점만을 극대화하는 사회생활의 종말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기도 한다. 


나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얼간이로 보이지 않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은 정부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탈출한 여유에서 공동체와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언론과 신문을 무작정 믿지 않고, 의심해서 바라볼 수 있는 건 우리의 몫이고.


앞으로도 나의 작은 플랜들을 여러 개 만들고, 지켜낼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그 긍정적인 성취감으로 여유가 생겨 사회까지 바른 길로 만들 수 있는 일부 일원이 되기를 바라며 조금이나마 책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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