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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의미학 Jan 22. 2017

선택과 인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과 그 선택 속 에서의 인연

우연히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의 커리어는 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 일에 올인했다면 지금보다 더 편안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그러다 이내 다른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우리 앞엔 갈지 말지, 할지 말지, 뭐 먹을지, 살지 말지, 일상부터 삶에 걸린 문제까지 엄청나게 많은 선택을 요구하는 게 많다. 그리고, 그 선택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유부단"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럴까? 항상 우유부단과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화두는 끊임없이 인기가 많다. 오죽하면 서울대 교수의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라는 명언이 인기를 끌었을까 싶다. 


내 경우엔 상황에 따라 태도가 상반되는 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선 지인들이 굉장히 안타까워할 만큼 많이 고민하고, 뒤돌아 보고, 후회도 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선 너무도 쿨하게 바로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근데 신기하게도 고민을 많이 한 것보다 고민을 조금 덜한것들이 손에 더 잘 들어온다.


예전에 한 TED에서는 선택권이 있는 삶이 없는 삶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믿음은 선택권이 많은 삶이 어떤 경로로든 폭넓은 앎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도 많은 고민에 휘둘리고, 만들어내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을 응원한다. 우연히라도 지나치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나의 작은 선택들과 고민, 그리고 인연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나로 인해 얻는 사람이 있기를.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나의 결정에 대해 정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값진 일이었음을 되새기기 위해.



21살 나의 두 번째 대학교.


나는 제주도 사람이다. 작은 둘레에 갇혀 생각하는 폭이 참 작은 사람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엄마, 아빠 속을 썩여가며 적당히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실업계 다니니깐 자격증이라도 많이 따야지 하고. 인생에서의 큰 선택이라는 건 주어지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19살에 처음으로 대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을 땐 막연히 떠나고 싶었지만 친구들, 가족과의 헤어짐은 상상할 수도 없어 제주도에 남기로 했다. 역시나 의지 없이 간 대학교는 내가 생각했던 내 모습 그대로였다. 공부는 뒷전, 그냥 소심하고, 친구랑 놀고먹기만 하는 그런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멀리 나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달의 고민 끝에 모두의 반대(특히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의 두 번째 학교를 내 의지대로 선택했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처음으로 가족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아버지가 그렇게 반대했는데 비싼 등록금이 미안해 사랑한다는 말 대신 인생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2학년 때부턴 전액 장학금도 두 번 안겨드리고, 2등이나 3등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제주도 있을 땐 엄마랑 데이트 해 본 기억이 없는데 멀리 있으니 방학 때 내려올 때마다 엄마랑 데이트하러 많이 나가게 됐다.


이기적인 고민과 선택이었지만 그 이기적인 선택으로 나는 미안함과 애틋함에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가족에게 잘할 수 있었고, 부모님 모두 결과적으로 변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가 아프셨다. 아버지 인생 중 나랑 잘 지냈던 건 내 어린 시절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아프시단다. 아버지가 많이 아픈 상태에서도 싸웠다.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어 공부를 했던 일이 욕심으로 번져 아빠가 아픈데도 장학금에 눈이 멀어 시험보러 갔다. 내가 사준 아빠가 회색 털모자를 쓰고, 쑥빵을 먹으며 내게 마지막으로 사준 구두와 말타툼이 마지막일 줄 몰랐다. 돌아왔을 때 아빠는 눈감고, 면회해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너무 가혹하게 이 못된 딸에게 반성할 기회도 주지 않고, 기다리는 일주일 중 또 내가 없는 3시간 사이 눈을 감았다. 아버지한테 효도해야겠다고 시작한 장학금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큰 불효가 되어 돌아왔다.


그 이후부터 계속 생각했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면, 그때 내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너무도 후회했고, 지금도 가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만큼 후회하지만 그럴때마다 냉정하게 배운 걸 생각해본다. 


책을 많이 읽었고, 무언가를 배우려 그나마 노력하게 됐고, 내 사람들에게 더 애틋하고, 잘해주고 싶은 걸 조금이라도 미루지 않고 해주는 것. 주변인보다 내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것. 



그리고, 첫 직장 퇴사


이후 가고 싶던 회사에 꽤나 높은?(높았다고 한다는데) 경쟁률을 뚫고 인턴으로 갔다. 위기에도 잘 버텼는데 변동이 심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어린 나이에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이 역시 고민 끝에 그만뒀다. 올바르지 않았던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나에게 맞는 부분이 꽤 있었고, 잘 했고, 성공하기에 적합했다. 윗 분이 배려해주셨고, 주변인이 말려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감정에 너무 휘둘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후 두 번째 직장을 다니는 1년여 가까이 그때의 선택에 후회 했지만.......그러나......



인생의 B양을 만나다.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도 회사에 애착이 없어 다른 모임 같은 활동에 빠져버리고, 배신당한 연애도 해봤다. 당연히 발전도 없고, 모두가 그것을 알았고, 그렇게 윗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다. 막장이었다. 하다 하다 안되니 영어라도 해볼까 해서 영어모임과 학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사는구나. 이들을 보니 내가 걱정하는 건 아주 사소한 거였구나. 회사 그만두고 싶던 시점이었는데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선택을 바꾼 덕분에 인생의 B양을 만났다. 1년 가까이 무리 지으며 같이 밥 먹는 그저 그런 동료로 여기던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B양. 오래 남은 이들이 떠나가고, B양과 나만 남았을 때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깨달았다. 비로소 B양에게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줬고, B양 역시 그러했다. 그 후 평일부터 주말까지 같이 학원도 가느라 7일을 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B양은 나에게 많은 힘을 주는, 메시지를 주는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다. 그 후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냈고,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1년 동안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열심히 살 수 있었다. 


만약 첫 번째 회사를 계속 다녔거나 두 번째 회사를 1년만 다니고 판단했다면 나는 B양과 가까워질 수 없었으리라. 여전히 서로가 그저 그렇고, 맘에 들지 않는 동료로 남았을 것이다. 


보라야 고마워.



미국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 정말 죽기 전에 해외에서 살고 싶었다. 지금 이때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고민을 끝내고, 미국 생활을 결심했다. 친구 없이 100% 낯선 곳에서 보내는 해외 생활이라니. 거기다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 선택에 3개월은 후회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할지 말지 고민하다 허송세월만 버리는 것보다 후회되는 것일까?라고 물어본다면 절대 아니다. 그곳에서 자신감을 많이 잃기도 했지만 어디 가서 어떻게든 살겠다는 자신감은 되려 더 얻어서 돌아왔다. 종교 도움 없이도 좋은 친구들 알아서 사귀었고, 돌아가면 더 이상 많은 이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내 친구들 동생들에게 더 잘해주리라. 



마치며

대학을 옮길지 말지, 시험을 볼지 말지, 퇴사할지 말지, 미국 갈지 말지에 대해 사실 나름 긴 시간 동안 고민했다. 


모든 선택은 다음으로 이어지고, 아무리 잘한 선택도 잘못됐을 수 있고, 아무리 잘못된 선택도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금 아쉬워도 이 삶이 후회하지 않는다. 


(P.S. B양아. 이게 너에 대해 쓴 글은 아니었는데 항상 내 얘기를 적다 보면 네가 빠질 수 없구나. 너는 언제나 나에게 많은 걸 해줬고, 편지도 많이 써줬는데 나는 그런 거 막상 하려 하면 오글거려 가끔 이런 글로 너에게나마 마음을 표현해. 볼지 말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아끼고, 앞으로도 너에게 배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너의 남자 친구가 질투하지 않도록 앞으로 널 덜 만나도록 노력할게 ㅠㅠ 너의 사랑도 소중하고 존중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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