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잡 박사 Jun 30. 2023

삼구 삼진 아웃같았던 상반기

하지만 아직 1회초가 지났을 뿐. 인생은 9회 말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 모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을 하면서 계속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2023년 상반기는 잔인한 달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온전히 독립연구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학교 업무에 적응하고, 새롭게 맡은 과목의 강의 준비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간을보내니 2022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2023년, 이제 좀 연구지원사업 등 이것 저것 지원 해보며,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 보려고 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던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석사과정 2년, 직장생활 3년, 그리고 다시 박사과정 5년을 거치면서 나에게 있어 박사학위의 의미는 매 순간 순간 달랐다.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스스로 독립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는 '자격증'같은 것을 받은 것이다. 박사과정 동안에는 학과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지도교수님이라는 어미새의 품 안에서, 둥지를 벗어나 스스로의 날개를 달고 날아갈 때 어떻게 날아올라야 할지 그 방법을 배운 것과 같다. 목적지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 목적지를 향해가기 위해 어떻게 날개짓을 해야 할지, 날아가다 폭풍우를 만난거나, 천적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피해야 할지, 그래서 그 목적지에 어떻게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박사과정시간이다. 여기서 잘 배우고 '자, 이제 너 혼자서도 날아가봐, 넌 할 수 있을거야' 라는 말을 듣는 것, 그 자격을 받는 것이 박사학위라고 생각한다.


졸업 후, 배운대로 원하는 곳으로 훨훨 잘 날아가는 아기박사 새들은 얼마나 될까? 

배운대로 날개짓을 해서 원하는 곳에 잘 도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엔 내가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잘 날아갈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에 가득 찼는데, 인생은 역시나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또 배웠다. 그러니까, 2023년 상반기의 나는 둥지를 벗어나, 내 길을 향해 날아가려고 하는데, 여기저기 장애물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지원한 입사 서류는 서류에서 탈락했고, 연구지원사업에 지원했으나 이것 또한 보기좋게 탈락해버렸다. 애를 쓰며 처음으로 A부터 Z까지 쓴 논문은 게제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처음 2번의 불합격, 탈락, 이런 소식들을 들을 때에는 속상하고, 화도 났다. 나름 열심히 실적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문제인거지? 싶어서 밤이면 남편이랑 맥주에 치킨을 시켜먹으면서 속풀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뭐하나, 치킨과 맥주는 내 살로만 가는것을. 


그러다 어느날,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좋아했던) 야구팀의 성적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10여년 전, 한창 야구장을 다니면서 응원할 때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아 가을 야구는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이제는 그팀은 몇년 전 부터는 가을야구는 꼭 진출하는, 조금은 강해진 팀이 되었다. 


생각 해보면, 야구경기만큼 예상을 뒤엎는 경기가 또 있을까? (그 짜릿함에 매일 야구장을 들락날락했던 때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경기들은 늘 이렇다. 경기 초반에는 삼구삼진(공 3번에 쓰리아웃)으로 점수도 못내고 상대팀에 끌려가느라 응원할 힘이 쭉쭉 빠지게 된다. 그런데 경기 후반부부터 갑자기 타자들이 공을 치기 시작한다. 상대팀 투수가 힘이 빠졌는지, 타자들이 공을 보는 눈이 좋아졌는지, 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공을 뻥뻥 쳐 대기 시작하더니, 9회에는 짜릿한 역전승을 이뤄내는 게임들 말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이 길도, 나의 커리어도, 지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 삼구 삼진을 맞는 1회 초를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계속 아웃만 되는 공들도 계속 집중하고, 여러번 휘두르다보면 홈런도 한 방 터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래, 세삼스럽게 이런 불합격 소식에 의기소침해질 필요가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이미 겪어봤잖아? 입사원서만 거짓말 안하고 100개 가까지 써보았고, 매일 서류 탈락, 면접 탈락의 고배도 마셔봤으면서. 이제 경우 3번의 불합격 소식으로 우울해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디선가 합격 소식은 NO, NO, NO, ,,, 의 끝에서야 Yes! 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이 말은 어쩌면 내가 코칭을 하면서 지겹게도 했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속상한 당사자의 마음을 오랜만에 느껴보며, 9회 말 짜릿한 역전승의 기쁨처럼, 

수 많은 no 뒤에 짜릿한 YES를 들을 때 까지, 하반기도 열심히 달려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