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숲 그늘아래 [웨지감자]

6. 웨지감자

by 익명의 작가

희수는 사회복지사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는 희수에게는 인생을 관통하는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바로 희수에게는 '도전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남자친구에게도 들었던 말

"너는 너무 현실에 안주하기만 해."

어렸을 때부터 희수는 그랬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뭔가에 깊게 빠진 적도 없었다.

그냥 매일매일 소소한 일상을 살아내는 게 좋았다. 가끔은 '내가 너무 감정이 없나'싶기도 했다.

무난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힘든일이 생겨도 무던하게 묵묵히 견뎌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렇게 도전 정신이 없는 걸까' 매번 고민을 하다가도

고민도 하루 이틀이면 끝났다. 희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 사회는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잘못으로 보는 것만 같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뤄내야 하고, 취미를 가져야 하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뒤척이는 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는 길 잃은 느낌에 눈물 한 방울씩 흘리며 잠이 든다.

하지만 희수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평생을 아동들을 위해 일해왔다. 중간중간 아동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래 근속한 사람들에게 주는 사회복지사 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희수는 빈 말과 드러나는 행동이 아닌 진심 어린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도와왔다. 희수가 부족한 것은 단지 이 사회가 원하는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이뤄놓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희수는 그저 자기 자신을 '현실에만 안주하는 사람'여기며 살아왔는데 어제 희수가 경험한 신기한 일은 그녀가 살아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어젯밤 평소와 같이 희수가 퇴근하던 길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남동생을 픽업해서 집에 같이 가려고

남동생이 내릴 지하철역 뒷 쪽에 차를 주차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띠링'

남동생이 희수에게 20분 정도 늦을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희수는 남동생을 기다릴 겸 지하철역 내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야겠다 생각했다.

희수가 차에서 내렸을 때 지하철역 뒤쪽 산 입구에서 이상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짤랑짤랑'

무언가에 홀린 듯 희수는 방울 소리를 따라 뒤쪽 산 입구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높게 서있는 도토리나무를 발견한다.

'이런 곳에 도토리나무가 왜 있지'

그녀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자

뒤에는 있어야 할 지하철역은 온데간데없고

그녀 주위엔 무성한 도토리나무만이 울창하게 서있었다.

희수는 당황했다. 얼른 이곳을 나가려고 돌아왔던 그대로 계속해서 걸어보았지만

지하철 역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핸드폰조차 터지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희수는 나가는 길을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얼른 불빛을 따라 뛰어가 보았다.

그러나 불빛은 도토리 숲 그늘아래 작은 오두막에서 나고 있었다.

희수는 얼른 오두막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제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혹시 안에 계시나요"

안에서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희수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릴게요"

희수는 오두막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았다.

뭔지 알 수 없는 따듯한 온기, 따듯한 분위기가

당황한 그녀의 마음을 진정하게 해 주었다.

나무테이블에 희수를 앉힌 그녀는

방금 튀기듯이 구운 웨지감자와 케첩을 내왔다.

희수는 극도의 허기짐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앞에 있는 모락모락 김이나는 웨지 감자를 케첩에 찍어 한 입 먹어본다.

웨지감자는 포실포실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맛이었다.

웨지감자라면 누구나 상상하는 맛있는 그 맛.

희수는 웨지감자를 먹으며 추억에 잠긴다.

희수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인 웨지감자. 희수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집에 오면 항상 웨지감자를 만들어 주었다. 거의 매일 만들어주는 웨지감자가 질릴 법도 한데

남동생은 항상 맛있게 그녀의 웨지감자를 먹어주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요리가 아닌 한 가지의 요리만 했던 희수는 요리마저도 참 도전 정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녀가 희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웨지감자는 웨지감자 본연의 맛일 때 가장 맛있더라고요."

희수는 그녀의 말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남동생을 위해 만들었던 매번 똑같은 간식인 웨지감자는 그녀가 그녀다웠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도전정신은 없지만 항상 꾸준하게 일관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삶이었다.

그런 그녀이기 때문에 항상 일관되게 책임감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변덕을 부리거나 그들을 위하는 마음을 변하지 않고 항상 꾸준하게 묵묵히 자신의 것을 지켜낸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녀에게 말했다.

"사실은 현실에 안주하는 제가 혹여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저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그냥 이것도 저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 고유의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였다. '똑똑똑' 누가 차문을 두드렸다.

희수가 눈을 뜨자 남동생이 자기 자신의 차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있었던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희수는 남동생과 집으로 가는 길 말했다.

"너 옛날에 내가 만들어준 웨지감자 기억나?"

남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맨날 똑같은 웨지감자를 만들어줘서 웃겼었는데. 근데 맨날 똑같은 간식 만들어주는 것도 너무 누나 다워"


희수와 남동생은 웃으며 그날의 일을 함께 추억했다.

희수는 더 이상 단지 '현실에 안주하는'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도전 정신은 없을지라도

그녀는 그녀다웠기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일관된 그녀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희수는 이제 누가 뭐라 해도 항상 묵묵히 자신답게 살아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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