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숲 그늘아래 [돈가스]

5. 돈가스

by 익명의 작가

종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지 않고서는 대학을 다닐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종석에게 주말은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고, 평일에는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병행했다. 심지어는 보증금이 없어 당장 월세를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고시원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건은 항상 밝은 사람이었다.

돈 때문에 좌절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 도움이 되는 제도나 여러 가지 공모전들이 보이면 성실하게 하나하나 참여했다.

그리고 종석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을 사랑했다.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종석이 졸업을 앞두던 그 해, 졸업하자마자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원서를 넣은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종석은 바로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합격소식을 받은 그때, 종석에게 졸업 전에 다 같이 모여서 술이나 먹자는 대학 동기들의 연락이 왔다.

동기들의 연락에 종석은 오랜만에 아르바이트를 빼고 참석한다.

동기들은 처음엔 종석을 엄청 반겼다.

“이야 귀한 손님 오셨네”

종석이 말했다. “하하, 오랜만에 아르바이트 빼고 왔지.”

술기운에 점점 분위기가 고조될 때쯤

종석의 대학동기들은 졸업 후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고,

종석에게 ”너는 무엇을 할 거냐 “고 물어봤다.

종석은 말했다.

“나 이번에 취직했어,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입사할 거 같아.”

그때 동기들의 표정을 본 종석은 당황했다.

온전히 기뻐해주는 것이 아닌, 기분 나쁨과 당혹감 사이 어딘가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깬 동기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가난이 좋긴 좋네, 네가 이것저것 잘 챙기게 해 줘서 취직도 잘되고. “

“월급은 얼마 받아? 서울 월세 비싸서 월세를 구할 수는 있어?”

종석은 뭔가에 머리를 탁 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종석의 성과가 ’ 가난‘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버렸다.

종석이 가난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종석에게 찍힌 가난이란 낙인은, 그들에게 종석이 잘 될 때마다 그들의 자존감을 채우는 데 사용될 터였다.


종석은 술자리가 끝난 뒤 집에 가는 길에 마음 한편이 아파왔다. 단 한 번도 가난이 창피한 적이 없었던 종석인데, 마치 가난은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는 동기들의 관점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히고 말았다.

술기운에 휘청 휘청 거리던 종석은 어딘가에 톡 하고 부딪힌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거대한 도토리나무에 ‘도토리 숲’이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짤랑짤랑’ 도토리나무에 작은 방울들이 바람에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종석은 술기운 때문인 건지 뭔가에 홀린 것인지

도토리 숲 안으로 이끌렸다.

한참을 걸어서였을까

저 멀리 도토리 숲 그늘아래

오두막에서 은은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 냄새는..’

종석은 익숙한 기름 냄새에 이끌려 오두막 문을 두드린다.

그러자 안에서 어떤 여자가 문을 열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나무 테이블로 부건을 데려가 앉혔다.

그러고는 부건에게 돈가스와 크림수프를 내왔다.

종석은 뜨거워서 윤기가 나는 돈가스와 크림수프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종석은 크림수프부터 한 스푼 떠먹어보았다.

뜨끈뜨끈하면서도 고소한 크림의 풍미가 느껴지는 수프 맛 덕분에 술기운 때문에 불편했던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종석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바삭한 돈가스에서는

육즙이 흘러나왔고, 돈가스 소스에서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고급스러운 맛이 났다.

“그런데.. 이 돈가스 소스맛은..”

종석은 깨달았다. 이 소스맛은 아빠가 직접 만든 돈가스 소스 맛이다.

종석이 어렸을 적 종석의 아빠는 돈가스 가게를 운영했었다. 아빠는 종석이 돈가스 가게에 놀러 가면, 항상 돈가스 위에 직접 만든 소스를 올려 종석에게 만들어 주곤 했다.

종석이 돈가스를 먹자마자 아빠의 돈가스인지 알았던 것은 바로 소스의 맛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돈가스 집에서의 소스맛과 달리, 아빠의 돈가스 소스는 부드러우면서도 깊고 고급스러운 풍미가 두드러지는 맛이었다.


종석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그녀에게 말했다.

“저희 아빠가 해주시던 돈가스 맛 그대로예요.”

“아빠가 큰아빠랑 동업을 하면서 돈가스 가게를 접으셨거든요.. 동업이 잘됐으면 좋았을 텐데 망해버려서 항상 저희 가족들에게 미안해하세요. “

그녀는 묵묵히 종석의 말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아빠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나요?”

종석은 말했다.

“ 단 한 번도 없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시나요? “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종석은 말했다. “돈가스예요”

“그때의 아빠가 원망스럽고 싫었다면, 제가 돈가스를 좋아했을까요?”

종석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오히려 아빠의 돈가스가 자랑스러워요.

다른 사람들이 아빠의 돈가스를 못 먹는 게 안타까울 정도라니까요. “

종석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빠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업이 실패한 것은 아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저는 아빠가 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

그녀에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종석이 눈을 뜨자, 종석의 앞에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따듯했던 오두막도, 방울소리 나는 도토리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종석은 신기하게도

술기운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종석은 오늘 동기들과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나아가는 우리 가족들이 자랑스럽다.‘


종석은 돈도 없고 집도 없었다.

그러나 종석에겐 가장 큰 재산이 있다.

그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이었다.

이전 04화도토리 숲 그늘아래 [김치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