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숲 그늘아래 [김치찌개]

4. 김치찌개

by 익명의 작가

'찰랑찰랑'

꽃집 문이 열릴 때 꽃향기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희는 동네의 작은 꽃집 겸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일 없이 조용한 이 동네에서

요즘 저녁에 자주 출몰하는 손님이 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와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다 가는 사람.

소희는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그 사람이 신경 쓰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이 오는지 안 오는지 기다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은 무슨 책을 읽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소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제가 식물을 키워보려고 하는데 작은 식물하나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소희는 그 사람과 식물을 어떻게 키우는지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사람과의 대화가 즐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희는 그에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소희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소희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 큰 두려움을 느꼈는데, 소희에게는

'연애'가 그러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애. 그리고 하고 싶지도 않았던 연애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저항감이 들었다. '저 사람이 진짜 괜찮은 사람일까?' '난 연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는데 다 망해버리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과연 나를 좋아할까?' '나에 대해 실망하면 어떡하지'

'지금 내 상황에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등등 연애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 그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해 나가면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의심하고 그를 마음속에서 밀어내는데

소희는 전심을 다했다.


그가 와도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대화를 피했다. 그때마다 후회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소희는 관계가 진전되는 것이 더 두려워 계속해서 그를 밀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더 이상 카페에 오지 않았을 때

소희는 크게 후회했다.

'왜 난 항상 이렇게 일을 그르칠까' '그냥 용기 내 볼걸.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왜 그랬을까..'

소희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를 뒤로한 채 가게를 정리하고

터벅터벅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원래 같았으면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야 할 버스정류장은 보이지 않고

큰 도토리나무가 옆에 서서 마치 숲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나무에 걸려있는 방울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짤랑짤랑'

'우리 가게에 있는 풍경 종이랑 소리가 비슷하네'

소희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도토리 숲' 안으로 들어간다.

울창한 도토리나무들이 있는 곳을 지나

도토리 숲 그늘아래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소희는 작은 오두막에서 나오는 작은 불빛을 따라 문이 열려있는 오두막에 홀린 듯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떤 여자가 서서 마치 소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소희는 말했다. "갑자기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그 여자는 따듯한 미소로 소희를 나무 테이블에 앉히더니 말했다.

"배고프지 않나요? 오늘은 김치찌개를 했는데 한 번 드셔보실래요?"

소희는 대답했다. "아 제가 매운 것은 못 먹어서요 어렸을 때 한 번 배탈이 나서.."

그러자 여자는 말했다. " 어렸을 때와는 다를 수 있어요 생각보다 안 매운데 한 번 용기 내 보세요."

소희는 얼큰해 보이는 김치찌개를 보며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먹어볼게요"

여자는 소희에게 얼큰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갓 지은 흰쌀밥을 내왔다.

소희는 얼큰해 보이는 김치찌개 국물을 한 스푼 떠 눈을 질끈 감고 먹어보았다.

어렸을 때 배탈이 난 이후로는 절대 먹지 않았던 김치찌개였다.

김치찌개 국물을 삼킬 때 얼큰한 맛이 소희의 목을 강타했다.

얼큰하면서도 깊고 진한 국물이 후회로 가득 찼던 소희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듯했다.

소희는 김치찌개 안에 있는 김치와 돼지고기를 싸서 흰쌀밥 위에 올려 먹었다.

오랫동안 푹 끓여 살살 녹는 김치와 돼지고기 그리고 갓 지은 따듯한 흰쌀밥이

소희의 도전정신을 자극시켰다. 이제 소희는 더 이상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너무 걱정만 앞섰던 거 같아' '이젠 용기를 내면서 살자'

소희는 이전에 무슨 일을 하던 이루고 나서도 자책했던 자기 자신을 생각했다.

소희는 모든 일을 후회로 만들고 있었다. 소희는 그녀에게 말했다.

"김치찌개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오늘 이렇게 김치찌개를 안 먹어봤다면, 전 평생 이렇게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살 뻔했어요. 제 인생도 그래요. 그냥 해보면 별거 아닌 일도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그녀는 소희에게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소희 씨 잘못이 아니에요. 이제는 두려워하지 마세요."

소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웃으며 감사하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 순간 '짤랑짤랑' 소리와 함께 눈을 뜨니, 소희 앞에 도토리 숲은 사라지고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두철은 도토리 숲에서의 경험 이후로 반복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고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퇴근 후에

동네 작은 꽃집 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일이었다.

퇴근 후의 변화된 작은 일상이 두철에게는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싱그러운 꽃향기가 나는 곳에서의 커피 한잔은 두철을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책만 읽다가. 점점 카페 사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꽃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는 그녀의 모습과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그녀의 모습들이 두철에 마음에 점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철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일단은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게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식물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와의 대화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일 퇴근 후 그녀를 보러 가는 것이 삶의 낙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회사일이 바빠 야근이 많아지는 바람에 카페를 한동안 갈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일찍 끝났으니 한 번가 볼까'

두철은 문이 열렸길 바라며 야근 후 카페로 뛰어갔다.


그 시각 소희는 버스정류장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한 것을 봤지만,

왜인지 모르게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왠지 다시 가게에 가면 그가 서있을 것만 같았다.

소희는 생각했다 '그래 이번엔 후회하더라도, 갔는데 그 남자가 없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자'

소희는 뒤로 돌아 자신의 가게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소희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가게 앞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바로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소희에게 말했다.

"요즘 야근이 많아져서 계속 못 왔었는데, 문 닫았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와봤거든요."

소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매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전 03화도토리 숲 그늘아래 [카스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