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스텔라
성진은 몇 년 전부터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누나와 크게 싸우고 나서 절연하고 말거라 다짐했기 때문이다.
성진의 아내는 이제 그만 화해하라고 했지만,
성진은 먼저 사과하지 않는 누나가 괘씸하다 생각하여 절대로 누나랑 마주치지 않을 거라 선포한다.
그렇게 성진과 누나는 바로 옆동네에 가깝게 살았지만 마음으로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진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달에 너희 엄마 생일인 거 알지? 이번에는 엄마가 '다 같이 보고 싶다'라고 하신다." 성진은 아버지께 "나중에 따로 찾아뵐게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후 성진은 누나가 먼저 사과하기 전까진 이번 모임에도 절대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아내 부탁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성진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고 생각을 정리하고자 집 근처 공원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짤랑짤랑' 저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방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더니, 멀리 처음 보는 숲의 입구가 보였다.
'공원 옆에 새로운 숲이 생겼나?' 궁금해진 성진은 방울 소리를 따라 숲의 입구로 들어가 보았다.
숲의 입구에 있는 큰 도토리나무 팻말에는 '도토리 숲'이라고 적혀있었다.
마침 생각정리도 할 겸 공원에 온 성진은 천천히 도토리 숲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도토리 숲은 정말 말 그대로 도토리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참을 도토리 숲 안으로 들어가던 성진은
저 멀리 그늘아래 오두막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두막에서 나오는 은은한 불빛은 왜인지 모르게 쓰라렸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성진이 오두막에 가까이 갈수록 오두막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빵냄새가 성진의 코를 자극했다.
'꾸르륵 꾸르르륵' 엄청난 허기짐에 성진의 배에서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갑자기 오두막 안에서 문이 열리더니 어떤 여자가 샛노랗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스텔라를 들고 서서
성진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셔서 드시고 가세요" 성진은 고소한 계란 냄새가 나는 카스텔라에 이끌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성진을 나무 테이블로 데려가 앉혀놓고 카스텔라를 먹기 좋게 잘라 홍차와
같이 내왔다. 성진은 촉촉하고 샛노란 카스텔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카스텔라는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식감을 가지고 있었고 달달하고 고소한 계란맛이 그동안 쌓여왔던 스트레스를 녹여주는 듯했다.
카스텔라를 먹고 홍차를 먹어주니 홍차의 약간의 씁쓸한 맛이, 느끼할 수 있는 달달한 계란맛을 중화시켜 물리지 않게 카스텔라를 먹을 수 있었다. 성진이 마지막 카스텔라를 한 조각 베어 물었을 때
성진은 카스텔라 조각에서 이상한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카스텔라의 쓴맛은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었는데..' 마지막 카스텔라 조각을 천천히 다 먹은 성진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 카스텔라는 제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빵을 만들어 본다면서
누나한테 만들어줬던 카스텔라 맛이에요"
"그때 밥솥으로 카스텔라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누나한테 만들어 주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성진은 왜 마지막 카스텔라 조각을 먹고 웃었는지 그녀에게 말했다.
"누나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간식을 해주곤 했었어요, 그래서 저도 누나한테 한 번쯤은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제가 제빵용 베이킹 소다를 넣어야 하는데 청소용 베이킹 소다를 넣고 만들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 만들고나서, 같이 먹는데 뭔가 씁쓸한 맛이 계속 나서 누나가 이상하다 싶어 재료를 살펴봤죠."
여자는 성진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누나가 뭐라 하지는 않았어요?"
성진이 대답했다.
"확인하자마자 남은 카스텔라는 버렸지만, 둘이 한참을 웃었어요. 누나는 내일 배 아프면 너 탓이라면서 장난쳤어요." "그래도 제가 만들어준 카스텔라를 엄청 아까워했어요."
성진은 여자에게 대답한 후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했다.
" 몇 년 전에 누나랑 크게 싸워서 연락을 안 하고 있어요. 근데 사실은 왜 싸웠는지도 잘 생각이 안 나고 이게 이렇게까지 자존심 부릴 일이었나 싶기도 해요." 성진은 어렸을 때 누나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후회했다.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성내고 연을 끊자고 다짐하고 자존심 부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성진은 남은 홍차를 마시며 일어나 그녀에게 '고맙다'라고, '자신이 먼저 누나에게 사과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성진이 그녀의 미소를 보고 눈을 감았다 떴더니
그녀와 오두막은 사라진 채
성진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내가 잠깐 졸았었나?'
성진은 벤치에서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핸드폰을 들어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누나.. "
그들에게 몇 년 전 크게 싸웠던 기억은 사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형제들이 싸우고 화해하듯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성진의 씁쓸했던 카스텔라, 씁쓸했던 마음은
용기 내 먼저 한 사과와 함께 달달하게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