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만두
서영은 요 근래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서영의 원래 전공인 서양화과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일들에 몸담고 있었지만, 사실 서영은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서영은 항상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서영의 이상과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 같았다.
그런 서영과 항상 부딪히는 건 서영의 엄마였다.
서영과 서영의 엄마는 항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영의 엄마는 어려운 집안형편에서도 서영의 재능이 그림이었기 때문에 서영이 서양화과에 진학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반면에, 서영은 어려운 집안형편에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그림'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서영은 그림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꼬인 것만 같았다. 자신의 자랑거리이자 재능이었던 '그림'을 선택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서영이 이렇게 그림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뀐 것은 대학교에서였다.
미술 대학에 들어간 서영은 교수들이 모두 인정하는 감각적인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었고, 서영이 그린 그림은 분명 매력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서영이 좌절한 부분은, 미술 대학에서 마주한 다른 사람들의 재력이었다.
서영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모두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서영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들은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 온다던지, 자신의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
하지만 서영은 뛰어난 그림 실력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작업실도,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서영은 그렇게 졸업 후 '작가'의 길이 아닌 입시 미술학원 선생님으로 취직했다.
어려운 집안을 도우며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못 이룬 그림 작가의 꿈이
가슴 한편에 남아 그녀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일을 해서 월급의 대부분을 가족들을 위해 지원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 모든 일에 대한 원망을 자기 자신과 엄마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계속된 자기 혐오감과 엄마에 대한 원망이 점차 커져만 갔다.
그녀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런 집안 상황에 왜 미술을 하게 내버려 둔 거야? 나는 미술을 한 게 인생에서 제일 후회돼."
그녀의 엄마는 말했다.
"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그림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미술 대학 졸업했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데.."
서영은 이렇게 말하는 엄마에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내 재능이 그림이면 뭐 해. 지금 그림하나를 못 그리고 있는데. 다른 애들은 이미 자기 전시회 열고 작품활동 하고 있는데 내가 이런 상황에 감사해야 돼?"
서영은 자기도 모르게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는 항상 후회했다.
서영과 엄마는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지쳐만 갔다.
그날 아침도 서영은 어김없이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고 나온다. 마치 이 모든 일이 다 엄마의 탓인 것처럼.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서영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사실은 서영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원망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 없었는데도 엄마에게는 왜 이렇게 이상하게 표현이 나가는지.
서영은 한참을 울다. 도착한 역에 내렸다. 그런데. 서영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출근길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때였다. 지하철 올라가는 계단 쪽에서 방울소리가 들렸다.
'짤랑짤랑'
서영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풀들과 넝쿨들이 보이더니
계단의 끝에 올라서자 서영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도토리나무였다.
도토리나무에서 아까들은 방울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서영은 믿을 수 없는 이상한 광경에 당황했다.
그러고는 길을 찾기 위해 숲으로 바뀐 지하철역을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때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다.
오두막집에서는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두막집에 가까이 간 서영은
오두막집 문 앞에 어떤 여자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영은 여자에게 물었다.
"길을 잃었는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러면 길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서영은 반신반의하며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갔다.
서영을 나무 테이블에 앉힌 그녀는
"같이 만두를 빚으며 이야기를 나눌까요?"
그녀와 만두를 빚으며, 서영은 엄마와 만두를 빚었던 기억을 생각해 냈다.
서영은 엄마와 만두를 빚는 그 순간에도 엄마와 싸우고 있었다.
"왜 엄마는 저를 이해하지 못할까요? 저는 사실 미술을 못했다는 아픔보다는 제가 미술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엄마가 이해해 주고 가슴 아파하길 바랐어요. 저 정말 이기적이죠?"
서영의 말을 듣고 있던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 엄마가 서영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서영은 그녀에게 말했다.
"가끔씩은 그냥 저도 모르게 엄마를 의심해요. 엄마가 정말 내 그림 실력을 믿는다면 그걸 살려주고 싶었다면
날 신경 쓰게 하지 말고 그림을 그리게 만들어줬어야 했었다는 원망이요."
그러고 나서 서영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사실은 그냥 엄마를 원망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사실은 제 자신이 확신이 없었던 것을
책임전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은 다 엄마가 믿지 않아서, 나를 지원해주지 않아서다'라고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잘 알아요. 돈이 있었다면, 누구보다도 엄마는 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냥 너무 속상했어요. 근데 이 속상한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삶은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에 집중을 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엄마라도 나에게 길을 알려주길 바랐나 봐요."
그녀는 그녀와 서영이 함께 빚은 만두를 찜기에 쪄서
서영의 앞에 가져오면서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이 만두처럼, 말하지 않아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어요"
서영은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만두를 먹으며 깨달았다.
직접 만든 만두피 안에 만두 속들이 알차게 들어있었다. 만두피 안에 어떤 속이 들어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가? 먹어보기 전까진 만두 안에 무슨 재료가 들어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서영이 생각할 때 서영의 엄마도 그랬다. 서영의 엄마가 서영에게 일일이 말하지 않은 마음들은
서영이 알 수 없었다. 서영은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영은 결론을 지어놓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저런 말이 나오는 거다'
'작가로 성공할 나를 믿지 못하니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거겠지'
하지만 엄마가 정말로 서영을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서영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서영이 다칠까 봐 힘들더라도 항상 업고 다니고,
요리할 때 불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고, 아플 때 잠 한숨 못 자며 그녀를 간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영의 엄마는 그녀의 안전을 최고로 바랬다. 그녀가 다치지 않기를 가장 바라는 것은 그녀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못다 한 서영의 '작가'란 꿈을 지지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서영은 이렇게 명확하고도 단순한 일을 왜 인지하지 못했는지, 왜 인정하지 못했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요. 저는 제 아픔만 제 자존심만 생각했지 단 한 번도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는 서영의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서영이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하철 방송에서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잠이든 걸까?'
서영은 빠르게 지하철에 내려서 한참을 고민한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사실 나는 엄마가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있어. 내가 미술대학에 졸업할 때 엄마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그 감정이 틀렸다고 한 것에 너무 미안해. 내가 인정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 같아. 내가 미술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줘서 고마워."
전화기 너머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서영아 엄마가 항상 사랑하는 거 알지?"
서영은 엄마의 말을 듣고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