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숲 그늘아래 [간장게장]

10. 간장게장

by 익명의 작가

미희는 서영의 엄마다.

미희는 어렸을 때부터 밝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1남 6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러나 미희의 엄마는 굉장히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미희의 엄마도 그녀의 엄마에게 사랑 표현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희의 엄마는 어떻게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미희는 엄마의 사랑표현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희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 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시골 사람이었던 미희는 언니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상경하여 학교를 다니게 된다.

서울에서 학교를 졸업한 미희는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놀러 간 음악다방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미희는 3명의 자식을 낳게 된다.

그중 미희의 첫 번째 자식이 '서영'이다.

미희는 서영을 낳고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제대로 알려주는 이 하나 없었고, 미희 또한 미희의 엄마에게 사랑의 표현 방식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미희는 자식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털 끝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밤낮으로 걱정하고 자식들을 지켜보았다. 미희가 첫 째 서영을 낳고 키웠을 때

서영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그 당시 미희는 시댁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형제 아들 딸들까지 미희가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희는 시댁에서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혼자 여럿의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시댁살이에 겹쳐 점점 짜증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미희는 가끔 그녀의 딸 서영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다.

미희는 이때의 일을 지금까지도 후회한다. '서영이에게 짜증 내지 말걸.. 화내지 말걸..'

시간이 흘러 서영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미희는 항상 서영과 둘째 딸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말하기 직전까지 턱 끝에 머물렀지만,

결국은 말을 못 하곤 했다. 미희에게는 받아본 적 없는 직접적인 사랑표현을 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이 미희가 지금까지 후회하는 두 번째 일이다. '자식들에게 사랑표현 좀 적극적으로 할걸'

그런 미희에게 인생 통틀어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서영이 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를 졸업하던 일'이었다.

첫째인 서영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던 그 순간을 미희는 잊지 못한다. 미희는 집안이 힘들어도 교육은 어떻게든 시키고자 했기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에 큰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첫 째 딸 서영은 '자신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것이 후회된다'라는 말로 미희의 가슴을 후벼 팠다.

미희는 가슴이 아팠다. 집이 잘살았다면 날개가 꺾이지 않고 훨훨 날아갈 아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미희도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딸 서영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술 대학을 졸업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나아가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의 딸 서영은 짜증을 부리다 집문을 '쾅'하고 출근을 했다.

미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란 역할도 참 힘들구나'

미희는 답답한 마음에 집 앞 공원에 산책도 할 겸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기 전 엘리베이터 밖에서 미세하게 방울소리가 들렸다.

'짤랑짤랑'

엘리베이터 1층에서 문이 열리자 보이는 밖에 풍경은

1층 복도가 아닌 드넓은 숲의 입구였다.

미희는 당황한 채 엘리베이터 문을 급하게 닫아보지만, 닫힘 버튼이 말을 듣지 않는다.

미희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방울소리가 나고 있던 곳에는 도토리나무에 '도토리 숲'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미희는 천천히 계속해서 숲 가운데를 살펴보았다. 조금씩 걸어서 주변을 살피던 미희의 눈에

저 멀리 그늘아래 작은 오두막집이 보였다.

미희는 얼른 그곳으로 가 오두막집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오두막집 안에서 웬 여자가 한 명 나오더니

미희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미희 씨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해놨거든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미희는 의심쩍은 얼굴로 조심히 오두막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 여자는 미희를 나무 테이블에 앉히더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간장게장과 갓 지은 흰쌀밥을 내왔다.

알 수 없는 극도의 허기짐과 맛있는 냄새에 홀린 듯

미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 간장게장을 먹어본다.

간장게장은 살이 꽉 차있었고 알이 가득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미희는 간장게장을 먹다가 가족들 생각이 난다.

'이 간장게장을 가족들이 맛보았으면 좋겠다'

미희를 보며 오두막집 여자는 말했다.

"요즘 속상한 일은 없으세요?"

미희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속상한 일은 많은데, 제가 뭐 친구가 있나 주변사람들이 있나, 말할 곳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그래서 딸에게 제 감정을 털어놓곤 하는데. 요즘 그것도 스트레스라 뭐라나."

"사실은 빚에 허덕이며 힘들게 살았어도 젊었을 땐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괜스레 힘들어지곤 해요. 그 와중에 자식들은 항상 저를 원망하는 것 같고.."

미희는 흰쌀밥을 한입 먹으며 말을 덧붙였다.

"저희 첫째 딸이 그림을 정말 잘 그리거든요? 근데 엄마가 돼서는 작가를 못 만들어주고 집을 도와준다고 바로 일을 하는 딸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근데 가슴이 아픈데 그걸 표현하는 것조차 잘 못해요.

사랑한다는 말, 너를 믿는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결국은 말하지 못해요. 이럴 때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미희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는 말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냥 한번 표현해 보는 것은 어때요?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면 좋겠지만.."

미희는 간장게장이 알을 품고 있는 게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희는 자식들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했다.

항상 그녀의 자식들을 꽃게가 알을 품고 있듯이 품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미희는 표현하지 못했다. 안전하게 품어냈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었다.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을 숨기고 피하려고만 했다.

그녀의 엄마가 미희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것처럼 미희 또한 그녀의 자식들을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엄마가 아니라,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웠던 다정한 엄마로 기억되기를 미희는 원했다.

"제가 너무 후회했던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저희 아이들에게 표현할 기회는 많은데 말이에요. 특히 첫째에게 제가 믿고 있다고 확신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요. 저는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고 있거든요."

이제 미희는 후회만 하지 않고 실행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미희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미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미희의 눈앞에 도토리 숲은 온데간데없었다.

'띠링 띠링'

미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큰 딸 서영이였다.

서영은 미희에게 말했다.

"엄마 사실 나는 엄마가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있어. 내가 미술대학에 졸업할 때 엄마가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그 감정이 틀렸다고 한 것에 너무 미안해. 내가 인정하지 못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 같아. 내가 미술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줘서 고마워."


서영의 말을 듣고 있던 미희는

서영에게 용기 내어 말한다.

"서영아 엄마가 항상 사랑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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