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Like Song Jul 26. 2022

Track99. 말하는 대로

2013년 3월.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사막의 밤

'여기서도 은하수를 볼 수 없는 건가?


 바닥에 깔아둔 담요에 앉아 생각했다. 손목시계에 엄지손가락을 살짝 올린 듯한 초승달이 뜬 사하라의 밤. 사방 수백킬로미터에 이르는 불모지에는 어떤 마을이나 도로도 없었다. 가이드가 보온과 조명을 겸해서 켜둔 모닥불이 꺼지자. 달과 별을 제외한 모든 빛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하라까지 건너와서 은하수를 보는 것을 포기할 순 없었다. 잠을 깨기 위해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마셔가며, 다시 두어시간 정도를 그렇게 앉아있었다. 슬슬 하품이 몰려올 무렵, 문득 올려본 하늘이 짙은 군청색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난히 높던 오른쪽 언덕 뒤로 달이 숨은 모양이다. 은은한 달빛이 검은 하늘과 검은 언덕의 경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달빛이라기엔 조금 연한 것 같기도, 먼지 구름인가? 그러나 해지기 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상태였다. 


은은하게 빛나는 띠 같은 구름. 머릿속에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급하게 카메라를 다시 삼각대에 올렸다. 노출시간 30초, 감도 6400.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빛이었다. 별 모양이 일그러져 나와도 좋고, 노이즈가 껴도 상관없었다. 그 형체가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찰칵.


세상에서 가장 긴 30초가 시작되었다.




2012년 8월, 교과서 속에서만 보던 별자리와의 첫 만남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춘천에서 우연히 북두칠성을 발견한 뒤 밤하늘에 푹 빠진 나는 더 많은 별을 찾기 위해 전국의 천문대를 돌고 있었다. 그러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횡성의 천문인 마을에 갔을 때, 그곳 천문대 소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은하수가 그렇게 보고 싶니?”
  “네. 그런데 다른 별자리랑 다르게 은하수는 너무 보기가 힘드네요”
  “그럼 사막에 가보는 건 어때? 구름 없지. 빛 없지. 별이 잘 보이는 조건은 모두 갖춘 곳이거든. 5년 전에 몽골 사막에 갔을 땐, 별빛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 같더라니까!”


  사막이라니. 당시 일본조차도 가보지 않았던 나에겐 지나칠 정도로 이국적인 단어였다. 머릿속으로 ‘알라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
 
  “언젠가 사막에 갔을 때를 가정하고 팁을 한 가지 줄게. 별을 볼 때는 핸드폰이나 다른 것을 보지 않고 계속 밤하늘을 보고 있는 게 좋아.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거든.” 
 

 그는 내게 말하는 동안에도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야. 다만 그 빛이 약한 것과 강한 것이 있어서 네가 못 찾고 있을 뿐이지.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그럼 계속 바라보기만 하면 될까요?”

 “그래. 또 일종의 ‘믿음’도 필요해. 오랫동안 하늘을 쳐다봐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흐릿한 별빛이 보인다고 한들, 그게 별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먼지나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넘기지 않겠어?”
 
  어린 시절 별을 세어보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가로등 옆에 하나, 지붕 뒤에 둘. 장보고 돌아오는 엄마 뒤에 셋. 그때는 꽤 별을 잘 찾아냈던 것 같다. 아마 어린애 특유의 오기 덕분일 것이다. 더 있어! 틀림없이 더 있어! 하는 그 오기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많던 별들의 자취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아니, 소장님의 말에 따르면, 별은 그대로 있으니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일 게다.


 늘어난 지식은 별을 보는 것을 방해했다. 북두칠성과 마주한 이후 천문대를 돌아다니던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밤에도 밝은 곳이 많아서 원래 별이 안 보여. 오늘은 달빛이 너무 강해서 별을 보기가 힘들겠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아무래도 봄은 힘들지… 은하수를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거짓말 같다고 여겨질 무렵, 소장님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생각한 대로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한 번쯤 믿어 보기로 했다.

-

찰칵.

인고의 시간이 지나, 카메라의 신호음과 함께 LCD에 불이 들어왔다. 손바닥 만한 직사각형 안에 우유가 번진 것 같은 자국과 아롱아롱 빛나는 모래 알갱이가 찍혀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은하수의 모습이었다.


 간증이 있으면 신앙이 더 확고해지는 법. 사진으로 확인을 거친 뒤 다시 밤하늘을 보자 은하수가 더 밝아 보였다. 십 분 정도에 한 번씩 별똥별이 별들의 강 사이로 지나갔다. 강물에서 튀어 오르는 연어 같은 모습이었다. 자리에 다시 누워, 이대로 해가 뜰 때까지 계속 은하수를 바라보기로 했다.  


 은하수는 확신을 주었다. 믿음을 가지고 밤하늘을 계속 본다면, 언젠가는 별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언젠가 다시 어두워진 하늘을 보고 실망할 나에게, 사하라 사막에서 꾹꾹 눌러쓴 이 편지를 부친다.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 쳐진 달팽이 – "말하는 대로”

[Infinite Challenge] 무한도전 - Sagging Snail - As I Say,처진 달팽이 - 말하는 대로 20150822 (youtube.com)

2013년 3월, 마침내 너를 만나다.


매거진의 이전글 Track01. 루비 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