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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리메 Nov 21. 2023

간호사라는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성격 예민하시죠?

한문철 변호사의 직업병 네이버 포토뉴스 출처



자동차 사고 전문 변호사 한문철 님은 차를 운전할 수 없는 직업병이 있다고 소개한 적 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는 정말 위기 때 도움을 주는 수호천사이지만 자신에게는 가혹하게도 불필요한 정보들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직업 때문에 곤란스러운 이들이 많다. 특히, 나처럼 간호사라는 의료진에 속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환자분들이 많이 올 수밖에 없는 환경 바로 병원에서는 아프기 때문에 대부분 예민하고 자신만 생각하기에도 벅차며 심지어 언제 아파서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정서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이다.


그래서 그런가 환자분들을 대할 때면 더 조심하게 되고 긴장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말 한마디 잘 못 건넸다가 오히려 그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태가 생긴다. 그런 상황들의 연속으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 역시 예민해지고 걱정이 많아진 상태가 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성격 예민하시죠?

간호사를 10여 년 한 어느 날 나이가 들어서 혼기가 꽉 찼으니, 주변에서 결혼하지 않느냐며 소개를 해주겠다고 난리다. 엉겁결에 나온 소개팅 상대는 내 얼굴에 우선 만족한 눈치 더니 만나보고 싶다고 했고, 약속장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 그는 내 표정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건네는 그 사람.


저, 혹시 성격 예민하다는 말 많이 듣죠?

이 말에 발끈한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뭔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어떤 말에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둥글 거려서 너무 천하태평이어서 오히려 걱정하던 사람이 많았다. 근데, 10년 동안 얌전한 직장생활을 억지로 껴맞추듯 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예민한 환자분들을 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 걸까? 그렇게 내 성격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대부분 얌전하다는 말 많이 듣죠??

나는 외향적이고 밝고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다. 간호사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 적응이 잘 안 되었다. 얌전히 있지도 못하는 편이고, 거기다 충동적인 성향이 강해서 ADHD의 약간의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충동적이다. 심하게. 그래서 돈을 잘 못 모은다. 돈이 생기면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해 버리고 후회한다.


그런 내게 얌전하다니?

왜 그렇게 생각할까? 싶었다.

근데, 그 요인은 다른 것이 아닌 내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을 대할 때 쉽게 다가가고 말도 쉽게 건넨다. 그래서 친구들도 많았고,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편이라.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낯가림 아닌 낯가림을 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많이 받아오면서 생긴 버릇 같기도, 아님 앞으로 오지랖은 그만 떨자며 나 스스로 가둔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나서지 않는다.


내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서야 조금 움직이는 편이다. 내가 간호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액팅(간호사가 병동에서 일을 할 때를 대부분 이렇게 부른다.)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외래 쪽에서 상담업무를 주로 했다. 그러니까 정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를 상대하는 말로 하는 간호를 서비스하는 일을 했던 거다. 그래서 말투 자체도 나긋나긋 상냥해야 하고, 행동도 정적으로 과장된 몸짓이 없어야 한다.

나의 성향과 정반대인 직업 특성상 나를 계속 묶어둔 채 일을 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처음 보는 이들은 얌전하다고 착각한다.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 역시 처음 본 분들이 많기에 내 성향을 드러내면 안 되기에 그렇게 변해갔던 탓일까? 처음 보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나서던 내가 없어졌다.



혈액형 A형이죠?


내 혈액형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BO 아빠는 OO 그래서 A형이 나올 확률 제로 % 인데, 다들 나만 보면 당연히 A형이라고 할까??


얌전하게 이야기하고, 나대지 않고, 조곤조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A형이 되었다.


물론 성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얌전하고 조신하고 나긋나긋하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많이 변했구나를 느꼈다. 그런 내가 싫지는 않지만 한편으론 세월과 직업의 특성에 나 역시도 나의 색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종종 있다.


예전 같으면 나서서 처리할 일도 “에이 누군가 하겠지? “ 이렇게 생각하고 만다거나, 활달하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그 안에서 리더로 자리를 잡고 있던 모습이 이젠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의 모습에 만족을 느끼는 이유는 단 하나 ”가볍지 않으면서 전문가 같은 모습“때문이다. 20대는 뭔가 가볍고 진중하지 못해서 아마추어 같다면, 30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불안한 모습이고, 그나마 40대가 되어서야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점차 내 안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서 발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전에 다운 받은거라 출처 불분명


결혼 당연히 했을 줄 알았어요.

나이가 40대가 되어 아직 미혼이라는 말에 대부분 왜? 아직도 안 갔냐며 놀라는 눈치들이다.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기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있었는데, 환자분들도 보호자분들도 심지어 동료들도 아직 혼자라는 나의 얘기에 의아해한다.


글쎄 내 생각이지만 전문직 여성에, 그나마 생긴 걸로는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튀지도 않은 수수한 외모에 키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키라서 그런 건지 당연히 애인이 있거나 대부분 결혼은 했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들의 당연함에 찬물을 끼얹어 죄송하지만 말이다. 간호사 일을 하다 보면 남자들을 만날 시간이 한정적이다. 물론 나는 상근직이라 주말에도 데이트를 했지만 그럼에도 간호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정감이 남자를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든다.


혼자 살면 어때? 남자가 꼭 필요해? 돈이야 내가 벌면 되지? 이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편이 많아졌고, 남자들을 고르는 기준 역시 평범해도 괜찮고, 돈을 많이 못 벌어도 괜찮은. 흔해도 괜찮은. 다만, 나를 언제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연애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기에 지금 혼자이지 않을까?




다른 직업도 10년 넘게 하다 보면 그 직업 특성이 자신의 성격에 많이 투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의료진인 간호사는 특히나 특수한 환경 탓에 더 많은 직업병이 도사리고 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박보영님

요즘 나오는 드라마 중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제목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내용도 간호사였던 사람이 결국은 정신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남일 같지가 않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의료 영역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심지어 감정노동의 산물이라고 불리듯이 모든 걸 다 총체적으로 겪어야 하는 곳이다. 그중에서 정신병동은 일반 사람들도 아프면 예민해지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게 변하는데 그 안에 입원한 환자분들은 위험한 환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우울해서 자해를 하거나 망상이 보여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들이 많다.


그래서 그 안에서 버티는 간호사들이 맨 정신인 것이 의아할 만큼 노동강도가 참 세다. 다른 직장을 다녀도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져서 더 심하면 공황장애가 생겨서 그만두는 이들이 참 많아졌다.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나약해서 큰일이야, 뭘 잘하려고 하질 않고, 의지도 없고, 조금만 뭐라 해도 울거나 아예 나오질 않으니 참 나” 이러면서 나약해서 생기는 일종의 변명이라고 치부한다.


근데, 그 사실을 어른들은 모른다. 당신네가 겪어온 삶의 터전과 지금의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터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사람사이에 정이라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 위해주고 넘어가고 거기다 학연, 지연 등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잘 봐줬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기는 그런 게 통하지 않는 사회다.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남에게 잘 보여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남을 걱정하거나 위해주거나 남에게 정을 베풀 시간이 없다. 그건 사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이 버거울 뿐이다. 그 역할에 대한 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에 어렵다. 또한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서 그 안에서 속하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오다 보면 너무나 외롭고 서럽다.


그렇게 혼자 생각하다 보면 “이 일은 내가 잘 못하는 거 같은데, 그만둘까?” 이런 생각이 나를 괴롭힐 때가 많았다. 몇 번이나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배운 게 이것밖에 없으니, 어쩌겠나?” 그나마 보수도 제일 많고, 인정받는 직업이기에 다른 일을 할 때마다 나를 다시 바로 잡아 준다.


그래서 지금도 간호사로 돌아와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채우고 있다. 평생직장이 없어진 지금 시대에도 간호사는 전문직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도 내려놓기가 어렵다. 아무래도 늙어서 요양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지 않을까 싶다.




40년 인생을 놓고 봤을 때 거의 20년 가까이를 간호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써먹고 있다. 전문직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각팍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아등바등 아닐까?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살펴봤는데, 성격적으로 많이 유순해지면서 차분해졌다.


대신 예민함과 불안함을 얻었다. 그리고 강박적인 사고가 생겼다. 정확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이 어느 순간 생겨서 대화할 때도 어떤 일을 할 때도 묻고 또 묻는 버릇이 나타났다.


내가 불편한 것보다 상대방이 불편한 점이 더 많다. 그리고 건강염려증이 더 심해졌다. 원래 약해서 이곳저곳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해서 병원을 자주 갔었지만 간호사가 되고부터는 점점 더 심해져서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병원으로 가곤 했다. 그래서 더 심각한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하는 장점도 있지만 피곤하기도 하다. 어떤 병의 증상 살펴보면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주변에 간호사가 있는가? 그럼 따뜻하게 안아주어라. 그들은 항상 마음이 지쳐있다. 환자에게 치이고, 동료에게 치이고, 의사에게 치이고 마지막으로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 당신 곁에 그 사람이 간호사라면 아니 의료진이라면 따뜻한 품을 내어주어라. 그들에게도 숨 쉴 공간 하나쯤은 필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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