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 역시 간호사로 멋지게 내 꿈을 펼쳐 보일줄 알았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전문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직업 중에 가장 주변 사람들에게 인식이 좋은 것도 한 몫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게 아닌 상처가 되는 곳
첫 수술실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내게 2번째 아픔을 준 곳은 성형외과 의원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없고 환자도 별로 없는 곳이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손님들로 바글거렸고 오죽하면 성수기 보너스까지 주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는 큰 꿈을 꾸고 입사를 했는데, 성형외과 상담실장으로 억대 연봉도 많이 받으면서 럭셔리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여긴 내가 생각한 곳과 너무나 달랐다. 간호사들도 아닌 조무사가 넘쳐나는 성형외과였다. 그곳은 상담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지식도 별로 없는 자격만 의료인으로 보이는 조무사들의 영업터전이다. (조무사를 무시하는 발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 저와 같이 근무했던 조무사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신규로 들어온 간호사에게는 그 들의 경력이 무시할 수 없는 지표였고, 그들은 그 경력에 상담실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누구는 억대연봉을 받으며 잘 나갔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내게 제일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쉽게 설명하고 인상도 좋아서 신뢰가 간다는 말도 많이 들었기에 근데, 그게 내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리고 나름 경력을 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렇게 존버를 하고 있는데 사건이 터졌다.
아마도 간호부장의 횡포 같기도, 나를 내 쫒고 싶었는데 알아서 나가기를 바라니 나가질 않아서 이리저리 보낸 거 같기도 하다. 성형수술을 하면 붓기나 멍 때문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입원까지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시 쉬다가 가신다. 그러다 보면 휴게실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나 성수기시즌이 돌아오면 손이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 하루에 쌍꺼풀수술만 100건이 넘으니 그분들이 쉬고 가는 자리만 여러 번 치워야 하고 얼음팩을 얼려야 하고 짐도 지하에서 받아야 하고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많았다.
그때도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근데, 너무 지친 나머지 전화로 짐을 부탁할 때 나의 목소리가 짜증 섞인 말투였나 보다. (지방 출신의 어투가 약간 좀 세게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변명 같아서 억울하지만 어쩌랴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걸) 그걸 빌미로 지하세계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성수기가 지나자 다시 컴백한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 보다 은따를 시키는 분위기가 조장되었다. 지금도 나를 왜 싫어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거는 나의 상사는 간호사도 아니고, 심지어 조무사도 아닌 홍보팀장이었다. 전혀 의료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사람이 환자들의 눈가에 있는 실밥을 제거하고 소독약을 바르고 처치를 한다. 의료법에 위반되는 행동이다. 진짜 지금 같아서는 의료법 위반으로 소송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암튼 그런 사람이 나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더니, 그전에 조무사가 그만둘 때 나 때문에 그만둔다는 말에 내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그 사람의 말만 듣고 나를 나무라고, 새로 들어온 조무사가 이쁜지 그 사람에게만 곁을 주는 이상한 상사였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렇다.
나는 이유도 모르고 점점 멀어지는 병원식구들에게서 소외감을 느꼈고, 갑자기 인사팀장이 내게 호출을 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내가 불편해서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는 거다. 내가 나갔으면 좋겠단다. 그렇다 나는 마녀사냥을 당했다.
지금도 이유를 모른다. 근데, 여자들만 득실 거리는 이곳 병원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정말 남자처럼 일로만 평가하면 좋겠다. 왜 일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사람을 평가하고, 어떤 사람의 의견에 그것이 맞다고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보니까 직장 내 왕따를 당한 거 같다. 요즘은 문화가 바뀌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예전보다 겉으로 보기엔 많이 줄어든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곳에 그런 문화는 존재하고 있다는 거다.
내가 그들에게 안 좋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함께 하는 동료라서 같이 잘 지낼 수도 있을 텐데 웃긴 건 그중에서 나와 살사댄스 학원에 같이 다니던 동료도 있었고, 처음부터 나랑 잘 맞는다며 밥 사주고 공통 관심사와 사는 곳이 같다며 엄청 친하게 대하던 그 사람도 내가 힘들 땐 등을 돌렸다. 아니 제일 먼저 나에게 칼을 꽂기도 했다. 그렇게 동료들에게 배신을 받은 후 내겐 불안증과 과호흡증 등 이상 증세가 동반되었다. 그렇게 점점 아파져만 갔다.
아픈 사람들에게 나이팅게일의 정신과 봉사를 사명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오히려 나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간호사의 프라이드 때문이다. 즉, 멋진 전문직 여성은 어떤 타이틀을 가져도 비교불가이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어지는 이유이다.
이 땅에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 꼭 힘 내고 부당한 대우에 참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그곳을 떠나서 더 대우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