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분들 아니 진상고객을 상대하는 건 이골이 낫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진 않는다.
근데, 같은 일을 하고 같이 힘들고 같이 견디면서 정작 그들끼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한 사람을 바보로 아니 정신병자로 만드는 공간! 그곳이 병원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병원마다 저희는 가족 같은 병원이에요. 태움 문화 근절합니다. 누가 요새 그런 구시대적으로 합니까! 이러면서 면접을 보면 그 상사는 절대 그 일을 하지 않아서 모르는 탁상공론만 펼치는 사무직간호사일 뿐이다.
예전에 어떤 뉴스를 통해서 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간호사의 죽음 이라며 자살한 뉴스 타이틀!! 그녀는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간호사 면허증까지 따고 결국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형병원에 신규간호사로 입사까지 했는데 자신의 삶까지 저버릴 만큼 어떤 힘든 일이 있었길래 그랬을까? 나도 그렇게 힘든 일을 겪어 오면서 나를 지키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버텨오기까지자살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수술실 차별대우
내가 신입 때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간호사 때의 일이다. 나의 첫 발령지는 작은 3차 병원 수술실이었다. 학교에서 아무리 공부를 해도 그리고 실습을 한다고 해도 어깨너머로 배운 거와 실제 경험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끼는 공간이었다. 특히나 특수파트에 아무나 출입을 제한하는 이곳은 멸균과 소독의 개념이 강박적으로 있는 곳이며, 실수는 허투루 용납 못하는 한마디로 전쟁을 치르는 군대였다. 나는 군부대에 신참으로 발령이 난 거였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너무 특수파트에 대한 환상에 들떠서 나는 이제 수술실 파트에 간호사로 재직한다며 휘파람을 부르며 짐을 쌓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절대 가지 말라고 하겠지만!!
멸균과 소독이 공존하고 매일 아침이면 수술실 전체를 알코올과 소독약으로 청소를 한다. 그날따라 다들 빠릿빠릿 움직여서 나는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뒷짐을 쥐고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이미 다른 곳을 했기에 또 다른 곳을 찾던 와중에 수간호사가 나에게 큰 소리를 친다.
네가 수간호사니? 어디서 뒷짐을 쥐고 돌아다녀? 다들 청소하는 거 안 보여!!
저는 지금 청소할 곳 찾아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말을 해도 지말만 하고 사라지는 저 여자!! 지금은 그렇게 불러도 된다. 이건 정말 별일 아니다.
수술실에 오는 외과과장들은 왜 이리 성격이 더러운지 기다리는 법이 없고, 무조건 호통이다.
야! 안 가져와!! 빨리!! 누가 걸으래!! 야 이 씨 XX 놈아!! 똑바로 안 해?
그 의사 내 생각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 성질을 우리들에게 다 퍼붓고 그렇게 하면 수술이 잘 될까? 마취한다고 환자들이 못 듣는 줄 아니? 다 들어 인마!!
수술실은 인신공격과 사람취급을 하지 않는 동네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특히나 수간호사의 편애지향적 차별에 더 이상은 못 견디고 나왔다.
항상 비어있는 수술실에서 몰래 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못나서 내가 모자라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적응도 못했고 못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선배랍시고 나를 교육해 주다가 못 알아듣는다며가족이 이렇게 가르쳤냐니? 머리가 빠가니? 등등의 심한 폭언들을 감내해야만 했다.
왜냐면 우리 선배들도 다 그렇게 컸다며 너희는 엄청 좋아진 거라 하면서 우리를 타이른다. 어디까지 참아내면서 일을 배워야 할까? 정말 간호사의 일은 이렇게 태움을 받으면서 배워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걸까? 의문이 든다.
간호학과 정원수를 늘리면 뭐 하나? 신입간호사들이 입사하고 적응할 때까지 버텨주는 간호사들이 없는데 그러니 매번 간호사 부족하다고 난리지만 정장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조차도 안 보이는 게 현실이다.
내가 입사했던 2005년도에 비해 지금은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다. 후배들이 버티지 못하고 병원보다 다른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걸 보면 짠하기도 하다. 나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른 병원을 전전했지만 그 어디에도 괜찮게 대하는 곳은 없었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어딜 가도 또라이들은 존재한다는 것처럼 이 병원에서 도망치면 다른 병원에도 또 있고, 어딜 가든 주변에 존재한다.
내가 미친 거라 착각하게 하는 곳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만 적응 못하고 나만 힘들고 나만 구박받는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이 처음에 입사하면 3년간은 이런 걸 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땐 그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즉,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하라는 뜻이었다. 무슨 시집살이인 것일까?
선배에게 대들어서도 안되고, 부당하다고 얘기하면 선배를 우습게 본다고 생각해서 근무시간을 엉망으로 주기도 하고, 억울하고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도 우리는 못 본 척 넘어가야만 편안해진다는 이상한 논리와 관습을 지키고 있었다. 다들 그랬으니까 나도 버텼으니까 너도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말이 되나??
내가 성격이 이상해서 잘 적응 못하는 건가?
내가 간호사가 적성에 안 맞나?
사람들은 왜 나를 다 싫어하지?
이렇게 그만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데 오히려 내 경력만 엉망인데...
언제나 밝고 해맑던 아이는 점점 갈수록 웃음이 줄었고, 자신감이 없어졌으며, 열정조차 가질 수가 없어서 어두운 곳으로 계속 내려갔다. 그렇게 나를 갉아먹는 우울이라는 고통 속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그 안에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들어올 땐 너무 쉽게 들어와서 그런지 나가는 방법이 어렵다고 느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를 내버려 뒀다. 아마 나 역시도 계속 이런 상태였다면 위에 나온 기사처럼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