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111(1학년 11반)
1학년의 쉬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소란스럽다.
채연이가 앞으로 나와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리로 뭐라 말한다.
나 "뭐라고?"
채연 "안아주세요"
앗.. 이 귀여움 누구랑 호들갑 떨고 싶다.
요즘도 학기 말에는 다 같이 영화를 보고는 한다.
애니메이션 만화이지만 뽀뽀를 하려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잘못하다간 단체로 침을 꼴까닥 삼키는 요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에
나는 괜히 장난을 치며
"안돼!! 다 눈 가려!!!" 하면서 화면을 가리는 척을 하곤 한다.
그러면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여자 아이부터 진지한 우리 반 반장까지 모두 괴성을 지르며
"안돼~~~~~~~!!!!"를 격하게 외친다.
그 짧은 시간에도 어떻게든 더 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눈은 절대 화면에서 떼지 않는 모습이 아주 기가 차다.
1학년을 내가 맡고 싶어서 맡은 게 아니다.
관리자가 생활부장 할래, 1학년 할래 해서 1학년으로 왔다.
본인을 상남자라고 자주 일컫는 빈이는 센 척을 자주 하고 말도 정말 어지간히도 안 듣는다.
알레르기 때문에 영양사 선생님과 대화할 일이 있어서 따로 급식실에 데려갔다.
낯선 곳에서 낯선 영양사 선생님이 자기한테 오니 살짝 긴장이 되었는지,
갑자기 슬쩍 내 손을 잡는다.
귀엽고 어이없어 웃음을 꾹 참는다.
역시 생활부장보다는 1학년이 낫다.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 시간.
우리 학교 도서관은 바닥 난방이 되는 마루가 있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스스로 자신의 실내화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보고 싶은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는다.
하루종일 약간의 긴장을 하고 책상에 앉아있다가
따땃한 도서관 바닥에 앉아서, 누워서 책을 보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은 금세 몽글몽글해진다.
조용히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것이 참 편안하고 평화롭다.
이 시간을 더 행복해하라고 나는 주로 도서관 시간을 금요일에 배치한다.
보통 이 시간에 아이들 일기를 읽으며 댓글을 적어주지만
오늘은 나도 다리를 쭉 뻗고 독서를 하기로 했다.
내가 다리를 쭉 뻗고 책을 보니까
내 다리 양쪽으로 아이들이 앞다투어 자기의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애들이 가버릴까 봐 나는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말할 사람도 없어 이 귀여움을 말도 못하고
한껏 올라간 광대를 책으로 슬쩍 가려본다.
요즘 스승의 날에는 편지나 색종이로 접은 카네이션이 흔하지 않다.
1학년이 가져오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엄마가 시켜서요'라는 대답을 예상하며
"이거 왜 주는 거야?" 하고 물으니 예상치 못한 대답,
"사랑해서요"
앗..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오늘 우리 반 인사는 "덕분에 오늘도 즐거웠어."입니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 "덕분에"를 넣어서 자유롭게 인사해 보세요.
28명의 아이들 중 17명은 내가 시킨 그대로 "덕분에 즐거웠어!" 한다.
네 명 정도는 안 한다.
둘은 마음껏 변주한다.
"김뚱땡 덕분에 뚱뚱했~습니다!" "박땅콩 덕분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남아라. 남아서 이야기하자꾸나.
그리고 다섯은 오늘도 아름답다.
"덕분에 즐거웠어. 내일 만나!"
"덕분에 색칠 재밌었어"
"덕분에 학교가 재밌어! 안녕"
그리고 늘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수인이가 말한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도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마음에 미소 하나 띄우고 교실을 정리하고 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