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달 Apr 29. 2023

두물머리는 핫도그지

삼칠이네 (3학년 7반)



어김없이 매년 학기 초에는 아이들과 학급 이름을 정한다.

3학년 7반일 때는 투표결과 압도적으로 '삼칠이'가 1등이었다.


나는 영구와 땡칠이도 아니고 삼칠이가 뭐냐며 웃었지만

땡칠이가 뭔지 알 턱이 없는 2012년생들은

선생님을 더 웃기고 싶은 마음에 만장일치로 '삼칠이'를 골랐다.


그 해에 나는 삼칠이들과 참 행복했다.




3학년 사회시간, '우리 고장의 옛이야기'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지명으로는 '말죽거리'가 있습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은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인 곳이라고 해서 '말죽거리'라고 불렸어요."


우리 2012년 생들은 그 어떤 개구쟁이도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연환경'을 알 수 있는 지명으로는 '두물머리'가 있어요. 북한강이라고 하는 강과 남한강이라는 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고 해서 두 물 머리라고 불렸어요."


나는 핸드폰과 TV화면을 연결해 내가 찍은 두물머리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풍경과 선생님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다.

"선생님 옷 예쁘다!" 하는 소리에 출근복도 좀 신경을 써야겠다 생각한다.


두물머리 사진을 열 댓 장 보고 나니 핫도그 두개를 들고 신난 내가 나온다.

"이건 사람들이 두물머리 가면 한 번씩은 먹는 유명한 핫도그에요. 혹시 여러분 두물머리 가게 되면 한 번 먹어보세요. 맛있어요.^^ "



아예 핫도그 사진을 대놓고 보여줘도 오늘따라 아이들이 반응이 없다.

그래, 공부나 하자. "'기와말'은 경기도 성남시..."


그리고 나는 다음 주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28명의 아이들 중 무려 9명이 주말에 두물머리를 다녀온 것이다.

나한테는 아무 반응도 없더니 집에 가서는 부모님을 들들 볶았나보다.


그런데 일기장에는 하나같이

‘차가 너무 막혔다'

‘차가 진짜 많이 막혔다'

‘엄마가 새벽에 출발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집에 올 때도 차가 막혀서 집에 오니 하루가 다 지나가 있었다'

‘두물머리에서 우리 반 친구를 만났다'

‘아빠가 회사가는게 더 몸이 편하다고 했다' 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나는 들리지 않아도 다 들리는 부모님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웃음도 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아홉명이 모두 기어코 핫도그를 먹고는 자랑스럽게 일기를 썼다. 한 명은 나처럼 핫도그 두개를 들고 사진을 찍어 일기장에 붙이고, 어떤 아이는 두물머리 사진은 하나도 없고 핫도그 사진만 하나 붙였다. 두물머리의 풍경이나 사회시간에 배운 것은 예의상 한 번 언급만 하고 나머지는,

‘차가 엄청 막혔다'

‘핫도그가 맛있었다'

‘핫도그를 50분동안 기다려서 아빠가 화가 났다'

‘핫도그를 또 먹고싶다' 뿐이었다.


아.. 담양 떡갈비도 참 맛있는데...

살려는 드릴게..





곰이는 누가 봐도 엉아다.

안 그래도 발육이 빠른데 친구들보다 한 살 나이도 많다.

평소에 밥을 얼마나 잘 먹는지 곰이가 밥을 남기기라도 하면 영양사 선생님은 어김없이 "곰이 혹시 어디 아파?" 하고 묻는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하얀 얼굴에 개구진 점 하나, 북극곰 곰이는

자폐아동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사실 거의 매년 만난다.

ADHD,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스펙트럼 등등..

곰이를 처음 맡고 무거운 마음으로 작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간다.

선생님은 대뜸,


"선생님! 축하드려요. 곰이 맡으신 건 행운이에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작년 선생님의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곰이 부모님께도 전해드리고,

1년을 고이 간직했다가 다음 선생님께 그대로 전해드렸다.





곰이는 일상적인 말은 어느정도 이해하지만, 말하기는 조금 어려워한다.

4세 같기도 하고 6세 같기도 하다.

곰이가 자의적으로 하는 말의 80%는 네! 아니면 아니! 이다.

두개만 갖고 웬만한 것은 다 표현한다.


열심히 말을 시켜 본다.

"곰이 오늘 아침 먹었어?"

"먹었어."

"선생님께는 존댓말 해야지"

"먹었어요."

"어떤 것 먹었어?"

"밥 먹었어."

"선생님께는 어떻게 말해야할까?"

"밥 먹었어요."


이제 여기에서 질문 한개만 더 하면 곰이는 자기자리로 가버린다. 귀찮게 하는 것은 딱 싫어한다.

내일은 무슨 반찬 좋아하는지 물어봐야지.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의 전형은 3학년이다. 초등에서 한 학년만 계속하라고 하면 3학년을 하고 싶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열 살자리 생명체들.


쉬는 시간을 쪼개 몇 분이라도 아이들을 관찰한다.

유독 억울하고 화가 많은 준하는 만나는 친구와 3분 이내에 갈등이 생겨 '3분 준하'이다. 나는 절대 친구를 그렇게 부르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렀지만 아무리 봐도 기가막힌 별명이다. 준하와 쉬는 시간에 만나는 친구들은 3분 이내에 나에게 이르러 달려오거나, 아예 둘이서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을 한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상대가 잘못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서로 우는 놈들 사이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친구 관계를 조정해주고 포청천처럼 심판도 하고 화해도 시켜준다.


보이는 갈등은 사실 쉽다. 안 보이는 갈등이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셋이 모이면 한 명은 소외되기 쉽상이다. 수빈이는 나머지 둘이 조금 더 친한 것 같아서 영 마음이 불안한데, 살짝 티격태격하더니 마음이 상했는지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로 간다. 순하고 말도 없는 수빈이는 다른 아이처럼 이르러 오지도 않고, 다른 친구들에게 가지도 않고 혼자 앉아서 색칠거리를 꺼낸다. 벅벅 혼자 색칠만 한다.


"수빈아~"

내가 이름을 부르니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팔로 눈물부터 닦는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이 짠해 웃어보이니 폭 안긴다.  

우리 둘의 애정행각을 보고 한 명이 달려와 자기도 안긴다. 우리 셋은 서로 다른 이유로 꼬옥 끌어 안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수빈이는 영 나에게 재잘재잘 말하는 친구가 아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에게 말하면, 선생님이 그 친구들을 혼내는 것이 아니니까 걱정안해도 돼! 선생님은 수빈이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도움을 줄거야." 해도 수빈이는 소용없다. 마침 수빈이를 도와주려고 종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는다. 사실 다음 쉬는 시간이면 아까 일은 다 잊고 다시 셋이 모여 이번에는 즐겁게 잘 놀 가능성이 많다.

 

우는 놈은 확실히 떡 하나 더 주긴 한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이고 요구하는 것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아이에게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게 된다. 반대로 내향적이거나 자기 주장이 너무 없는 아이의 학부모는 마음고생을 참 많이 한다. 친구들에게도 치이고 교사에게도 존재감이 없을까봐 걱정이다. 사실 잔소리를 덜 하게 되는 것은 있긴 하다. 대신 여리고 순한 친구에게 교사는 사랑을 주게 된다. 아이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해주는 많은 어른들을 만나 도움도 받는다. 또 무해한 친구를 알아보는 비슷한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너무 걱정만 하지는 마시길.





반 아이들이 모두 곰이를 좋아하지만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

쉬는 시간이면 대여섯명이 곰이를 둘러싸고 장난을 친다.


하지만 곰이는 일편단심 민서뿐이다.

곰이가 민서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민서만 보면 눈도 안 보이게 헤벌레 웃는 것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그 이야기를 꺼낸다.

철없는 나는 곰이에게 장난친다고 대놓고 물어본다.


"그러면 곰이는 우리반에서 누가 제일 예뻐?"


곰이가 말했다.

"선생님이 예뻐!"


어머나 ㅎㅎ  

나는 그 때 몸이 안 좋아서 살이 10키로가 찌고

알레르기로 얼굴이 뒤집어져 활화산같은 얼굴이라 보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묻던 때이다.


4~6살 아이들은 극강의 솔직함을 자랑하며 외모 평가는 칼같이 하기때문에

곰이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아이들이 갑자기 자신도 질 수 없다며 "맞아! 선생님이 제일 예뻐!" 해준다.

똑똑하고 냉철한 아이가 말한다. "사랑하면 원래 예뻐보이는거야!"  


그럼그럼...

아니 잠깐, 저 말은 뭔가 기분이 좋은듯 안 좋은듯 애매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