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도 이전의 원의도. 원의도 이전의 근본의도.
오늘도 갈대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 봅시다.
기억하세요.
"무엇이든, 당신이 의도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수없이 실패한 의도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별 의미 없이 들릴 것입니다.
어쩌면 사기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우리가 떠올리는 모든 의도는 항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의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까요?
당신의 소망은 '의도'의 발현입니다.
그리고 '의도'는 하나가 아닙니다.
셋입니다.
'소망'의 본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소망'은 '소망하다'는 동사의 명사형입니다.
무언가를 소망하기 위해서는, '소망하는 것을 의도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소망 =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의도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란 뜻입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소망할 때 그것에 서려있는 의도를 먼저 관찰해야 한다는 사실은, 라이프루시딩에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 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망의 원형인 의도는 '소망의 동기'라는 형태로 소망 안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하지만 소망은 본연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루시딩의 수행자들은 '원의도와 반의도'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에 입각해 소망과 의도의 관계를 역 추적하여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표면의 소망] < [반의도] < [원의도]라는 구조가 됩니다.
그럼 '원의도'가 의도의 원형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근본의도'의 존재를 자각하세요.
지난 '원의도와 반의도 리터치. 딥터치 수업'에서 처음으로 밝힌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근본의도'라는 것의 존재였죠 ^^
'결핍에 의해 생성된 반의도'와 '그것의 심연에 있는 원의도' 정도가 전부라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삼수분화-삼각구도'로 구성되는 법! 의도 또한 본래 삼각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의도와 원의도 이전에 존재하는 '근본의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근본의도를 일컬어 "순수한 창조의 의도"라 부릅니다.
'순수한 창조의 의도'라는 말은 제 강의에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반의도와 원의도를 간파하기도 바쁜 판에 "순수한 창조의 의도는 또 어떻게 포착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순수한 창조의 의도'는 말 그대로 "긍정과 부정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지극히 보편적인 창조의 의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절대궁극실재는 '창조하는 자'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가 곧 '존재'이니 그 원형은 순수한 '있음'입니다.
'순수한 있음'이라는 속성은 인간의식의 핵 지점인 '순수의식 = 있음 = Am의식'이라는 형태로, 당신의 표면의식(에고)과 순수존재의식(보편적 존재의식)의 가장 깊은 곳, 의식이 시작하는 그 지점에 언제나 있습니다.
당신 존재의 씨앗인 '있음' 자체가 순수한 창조의 의도를 아무런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있음'이라는 순수한 창조의 의도를 '근본의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수한 '있음'은 마치 무색무취의 태양 빛과 같습니다.
본래 태양에 뻗어 나오는 빛줄기는 색깔도 형태도 없습니다.
이 순수한 빛이 어떤 대상에 부딪힐 때, 대상을 프리즘 삼아 가시광선 스펙트럼으로 분화될 때 인간은 비로소 색깔이라는 형태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근본의도'란 바로 이 순수한 빛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있음'을 예로 들어보죠.
'있음'이라는 순수한 창조, 존재의 의도는 긍정(양)과 부정(음)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본래 하나의 '있음'이 '좋게 있음'과 '안 좋게 있음'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좋게 있음'은 또 다양한 사정, 상황, 형편, 경우에 맞추어 수백, 수천 개의 '좋은 있음'으로 분열되고,
'안 좋게 있음' 또한 수천, 수만의 '안 좋은 있음'으로 분열되며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갑니다.
이 둘을 비교해 봅시다.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로 있음"과 "너무 고통스럽고 불안한 상태로 있음"은, 겉으로 보면 전혀 달라 보이지만, 긍정과 부정, 유리와 불리를 빼면 결국 같은 존재상태입니다.
그저 '있음'인 것이죠.
그렇다면 근본의도이자 순수한 창조의 욕구의 자리에서 보면 "좋게 있던 안 좋게 있던 결국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있고자 하는 의도, 순수한 존재의 욕구라는 소망은 완벽하게 이루어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당신의 진짜 소망은, 순수하고 근본적인 창조의 의도는 항상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일단 인정해 봅시다.
"나의 소망은 항상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주인공으로서 우리는, 단지 근본의도를 실현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예를 들어 보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무언가가 "되고 싶다"라는 근본의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신용불량자가 되고 싶다" "사회부적응자가 되고 싶다" "ㅈ 되고 싶다" "실패자가 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왕 될 바에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목표한 바를 성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를 선호하겠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에, 목표한 바를 항상 성취하는 사람이 되기에 나는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제한할까요?
'근본의도' 자체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하지만, 각자의 카르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자기규정 관념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오염된 상태"가 그것을 제한합니다.
여기 깨끗한 유리창이 있습니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창의 이름은 "순수한 창조의 욕구. 근본의도"입니다.
이 유리창에 이런저런 때가 덕지덕지 끼게 됩니다.
결국 깨끗했던 창은 더럽고 얼룩진 창이 됩니다.
더러운 창으로 바라본 밖의 풍경은 더럽고 얼룩진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가 존재하고자 하는 근본의도"를 먼저 자각하고 얼룩을 닦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글의 주제는 이게 아닙니다.
이 사실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의도든, 소망이든, 결국 이루어진다.
"무언가를 소망할 수 있다면, 얼룩진 모습이든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당신의 소망이 '결핍에 의한 반의도'로부터 비롯된 소망이든 깨끗한 소망이든 간에, 그것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무언가를 소망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반의 도로 얼룩진 소망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소망이 마음에서 일어났다는 말은 "그 소망의 근본의도 자체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소망이 비열하든, 간사하든, 악하디 악하기 그지없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소망이 그렇게 변질된 것은 수많은 관념과 상처들이 반의 도로 작동한 결과일 뿐!
"소망이 일어났다는 자체가, 순수한 창조의 의도가 실현되고 이루어졌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
그래서 항상 말해왔습니다.
"무언가를 소망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반의도가 투영된 소망이든, 악하고 간사한 소망이든, 아니면 고귀하고 아름다운 소망이든!!!
당신이 느끼는 소망 그 자체가 "그것의 씨앗이 되는 순수한 창조의 욕구와 근본의도가 실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의심의 여지없이 "당신이 소망하는 모든 것은 항상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말을 여러분들의 정신승리, 잠깐의 위로를 위해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의도와 결핍은 정화하고 치유하면 될 일입니다.
그보다 근원적인 사실을 명백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해서 이 글을 씁니다.
당신의 현실이 반의도에 의해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창조되든, 모든 것을 극복하고 멋지고 아름답게 창조되든
이 모든 현상의 근저에 있는 하나의 진실은
"순수한 창조의 욕구로 일어나는 근본의도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당신의 소망은 항상 이루어집니다. 아니,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것은 근본의도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수많은 관념의 때를 벗기고, 오랜 시간 형성되어 온 습을 새롭게 하여, 나의 소망을 본연의 의도, 근본적인 창조의 의도에 합치하는 아름다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뿐입니다.
스스로를 믿으세요.
그런데 못 믿겠죠?
그럼 이 이치를 믿으세요.
"절대 궁극실재의 순수한 창조의지. 그것이 서려있는 [근본의도]는 항상 이루어진다.
내가 무언가를 소망한다면, 그것은 항상 이루어진다"
사실 믿음을 가지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을 믿는 것이 안 된다면 "이치와 섭리를 믿으면 될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힘을 냅시다.
당신이 존재하게 된 근본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 순수한 '있으라'라는 의도는, 당신의 삶이 아무리 가치 없어 보여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현실이 시궁창 이어도, 내가 악한 사람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시궁창 같은 비참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한 삶이 있으라!"라는 근본의도는 실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 삶이 지금 아무리 못나고 형편없어도, 심지어는 악하다 해도, 하느님 눈에는 그저 소중한 "당신의 소중한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오염된 거울은 닦아 나가면 될 일입니다.
오염된 의도는 정화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믿음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당신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음' 또한 결국 "이루어짐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게 되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위할 것인가!"만이 남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