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이 본연의 <앎>입니다. (feat: 깨달음의 실체)
인간은 본래 독립적인 사물이 아닙니다.
'인간존재'라는 것은 본래 '의식' 입니다.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통 '한 몸뚱이 존재'가 탄생했다고 여기겠지만 실제로는 '한 의식'이 탄생한 것입니다.
왜냐면 몸뚱이는 의식의 작용이 없으면 그저 고기 덩어리일 뿐이며, 마음이라 부르는 정신심리 작용 또한 알고보면 의식의 활동에서 파생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의식'입니다.
그리고 '의식'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점으로부터 지워지게 되는 근본적인 굴레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바로 '앎'입니다.
인간은 지구 상 그 어떤 존재보다 '앎'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체험하는 앎의 깊이는 동식물과 비할바가 아니며, 이 앎의 축복을 통해 눈부신 문명의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축복받은 능력이라고 여겼던 이 '앎'이 동시에 궁극의 깨달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의식'이며,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존재는 근본적인 굴레 안에 갇히게 됩니다.
축복받은 능력인 '앎' 자체가 바로 '치명적인 굴레'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의식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 의식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바로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식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직성이 풀리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속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속성은 자연스럽게 2가지의 현상을 가져옵니다.
1)모르는 것,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과,
2)앎을 유지하기 위한 집착이 그것입니다.
알아차려야 직성이 풀리고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말은 "알지 못하는 것 앞에 서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고 위협을 느낀다는" 의미라는 것을 아십니까?
이 같은 속성 때문에 인간은 항상 미지의 대상을 '문제와 위협'으로 간주해 왔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식작용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뇌 또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진화해 왔습니다.
즉 두뇌는 안전한 환경과 조건을 보장받기 위한 예측도구인 셈이지요.
그리고 이 때문에 '명상'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
명상의 본래 뜻은 '인식의 상을 어둡게 하여 의식의 근원으로 침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언가를 알려면 인식되는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상을 모두 제거하여 '앎이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 명상의 본질입니다.
의식의 근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오히려 인식 대상들을 지워나가는 것'이죠.
명상적 관점으로 볼 때 인간 존재는 어찌보면, 일체의 의식작용을 고요하게 만들어 의식의 근원으로 회귀하는 명상 행위의 대척점으로 나타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명상에 서툴러서 명상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에게 명상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대적행위'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인간은 '본연의 진실(일원성)에 대해 날 때부터 대척점에 선 반항아'이니 말입니다.
본연의 진실에 반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는 존재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항상 무언가를 의식해야만 스스로를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존재는 자기자신에 대한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Cogito, ergo sum"
이 문장은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 끝에 도달한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라틴어 명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장 안에 인간이 내린 자기결론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생각'이란 '의식 활동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이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모르는 무언가'를 알기 위해, 명백하게 이해되어 '미해결된 문제가 아닌 해결된 문제로 남기기 위한 의식작용'이 바로 생각입니다.
그런데, 앎의 기능이 단순히 '대상을 아는 것' 뿐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앎은 대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드러내기 위한' 작용입니다.
대상을 알아서, 미지의 것을 알아내서, 안심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미지의 문제를 해결해서 '안도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대상을 앎'을 통해 안심하는 자가 바로 '나'입니다.
그렇다면 '앎'은 단순히 대상을 알기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뭐가 진짜 목적일까요?
'앎'의 진짜 목적은 '인식작용의 주객도식을 통해, 대상을 아는 순간, '대상을 아는 자. 주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목적인 것입니다.
대상을 앎으로써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문제의 해결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죠.
'앎의 내용' 배후에 있는 '아는 자'로서 존재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앎은 인식을 위한 도구정도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드립니다.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어떤 본질, 실체가 있습니다.
그 본질인 당신이 세상을 생시, 꿈, 깊은 잠이라는 3가지 상태를 순환하며 체험합니다.
생시 상태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앎이 작용하고 있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입니다.
꿈을 꾸며 꿈을 인식하는 앎이 작용하고 있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입니다.
그럼, 꿈 조차 없는 깊은 잠 안에서는 어떨까요?
깊은 잠 안에서는 '나라는 느낌'도 사라지고 '알려지는 대상'도 모두 사라집니다.
그럼 주체와 대상이 모두 사라지니 "나는 내가 아닐까요?"
어떻습니까? 깊은 잠 안에서는 당신은 존재하지 않고 사라지는 걸까요?
만약 잠 안에서 사라지는 '나와 세상'이라면 그것은 그저 의식이 만들어낸 그림자일 것입니다.
실체 없는 환영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잠 없는 꿈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러니까 "앎이 없는 상태에서 당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의식'이란, '앎'이란 궁극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궁극적인 실체로부터 뻗어나와 의식의 비춤작용을 수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수행의 첫 단계에서 당신은 스스로가 몸과 마음(정신심리작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몸과 마음을 벗어나 "이를 모두 아는 의식"이라는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렵사리 도달한 이 정체성 마저 부정할 차례입니다.
의식이 만들어내는 '앎'이라는 것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반드시 '앎의 대상'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앎의 주체라는 기능'이 있어야만 발생하는 조건제한적인 현상입니다.
당신의 앎은 의식의 기저에 깔린 정보(관념)와의 대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부차적인 지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렵사리 도달한 "의식이 나다"라는 관념에 의해 그 자리에 또 붙잡혀 있네요.
인간 의식은 선언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에 따른다면 나는 "생각하는 자"이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당신이 "의식이 나다"라고 고집하는 동안에는, 당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존재한다는 생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앎은 대상과 주체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하지만 인간의식은 알려지는 대상에만 집중하며 배면에 드러나는 주체를 잊었습니다.
어쩌다 배면에 드러나는 주체의 정체를 인지하기 시작한 이들은, 그 배면의 느낌을 또 실체화 해, 그 느낌을 자신이라고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결국 의식상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앎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세요.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실체라면,
"자기 자신을 의식하든 말든 영향받지 않을 것 아닙니까?"
생시와 꿈처럼 의식이 있든,
깊은 잠이나 마취처럼 의식이 없든,
의식작용과 앎이 있든 없든 당신의 존재는 침범받지 못할 것 아닙니까?
이제 깊이 사유해 봅시다.
"<내가 있다는 유일한 진실>과 <내가 있다는 느낌.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 안에 깨달음의 단초가 숨어 있습니다.
당신의 "내가 있음"은 "그 사실에 대한 앎(내가 있다는 느낌&생각)" 정도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일체의 부연 설명과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유일한 진실. 궁극의 실재>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명상합시다.
당신은 어떤 존재상태를 원합니까?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머무르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내가 있다는 진실>그 자체이기를 원하나요?"
저는 이 글에서 깨달음의 실체를 밝혔습니다 ^^
깨달음이란 '앎'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고작 앎 정도가 아닙니다.
'앎'이란 어떤 '사실'에 대한 설명이요 수식일 뿐입니다.
깨달음은 본래 <내가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은 의식적 앎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의식이 있든 없든, 앎으로 알려지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유일한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앎은 "스스로를 굳이 알아보며 확인할 필요가 없는 앎, 바로 '모름'" 입니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이 '모름'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