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사랑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by 라이프루시딩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전쟁 같습니다.


오죽하면 예전 인기 TV 프로그램에 “사랑과 전쟁”이란 제목이 있었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경험합니다. 동시에 증오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이 전쟁이 되고는 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앓게 되는 열병이 있습니다.

“사랑의 열병” 입니다. 그럼 사랑은 질병인 걸까요?


사랑은 질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어떤 감정”의 경우에는 충분히 심리적 이상 현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사랑과 사랑으로 혼동되는 감정”에 대해 구분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잘 모르고 계시지만 우리말 “사랑”의 어원은 한자어 思量(사량)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하고[思 : 생각할 사] 마음을 헤아린다[量 : 헤아릴 량]는 뜻입니다.


이 어원의 근거는 1577(선조10)년에 펴낸 고려 말기의 불교 관계 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책인 야운자경(野雲自警)이라는 불교 서적인데 16세기 국어연구의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思量이 16c이후 시옷 밑에 아래아 자를 쓴 사ᆞ량>사량>사랑이란 말로 변화된 것으로 한자어에서 우리말 화 된 내력을 지닌 단어 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일까요?


비이원성에 입각하여 말하자면, 바로 상대방의 다양한 사정, 상황, 형편, 경우를 상대성, 동시성, 전체성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헤아려 준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할 때는 마음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자기 본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의 어원이 사량이라는 사실은 또 한가지 숨어있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불교의 유식학 이라는 학문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구분할 때 표면의식, 잠재의식, 심층 무의식의 3층 구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유식학 에서는 가장 표면의 의식을 “요별(了別)”식 이라 부릅니다.


이 의식 층은 인간이 인지하는 가장 표면의 마음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뜻은 '분명(명료)하게 분별한다'로, 대상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인식(認識: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보다 깊은 잠재의식 층의 마음을 “사량(思量)”식이라 부릅니다.


이 의식층은 “자아 의식층”이기도 한데, 모든 감각이나 의식을 통괄하여 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에고가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랑”의 어원인 “사량”이라는 이름이 이 의식층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각하고 측량하여 헤아리는 기능 자체가 본래 대로라면 자아감각, 나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량”이 “사랑”의 의미로 쓰일 때는 이 속성이 전혀 달라집니다.


이미 앞에서 알아봤듯이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헤아리는 기능 자체가, 에고의 중심인 잠재의식, 자아의식 층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야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나를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헤아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타적이 되어버리죠.


그럼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할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내가 사라져 버립니다.


본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야 하는 마음이, 나를 버리고 대상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헤아리게 된다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고집이 내려놓아 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자아감각의 경계를 넘어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말이 됩니다.


보통 좋아한다 싫어한다 등의 호불호 작용은 표면의식의 “요별 작용”입니다.


하지만 가슴 깊이 사랑하는 것은 잠재의식/자아의식의 작용입니다.


그러나 이런 깊은 사랑을 할 때도 필연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주관적 기준의 관념들”이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관적 기준이 조건이 되어 그것을 충족시킬 때는 사랑이 되고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는 배신으로 간주하여 증오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랑이 나를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사랑일 경우에는 본래의 “사량”을 뛰어넘지 못한 것입니다.


이는 증오라는 감정과 상대적으로 일어나는 “사랑을 닮은 사량(생각과 측량)”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라는 감각 이전으로부터 일어나는 작용 입니다.

그렇기에 “이원성”이 아닌 “비이원성”의 속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일어나게 됩니다.


“나”라는 감각이 일어나면 “나를 중심으로 한 사랑”이 작동하게 되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통상적으로 “사랑”이라고 느끼는 정신작용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 이전의 “하나의 진실” 입니다.


너와 내가 분리된 개체가 아닌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생각, 감정, 반응, 행위가 진짜 사랑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나로부터 분리된 대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는 모든 대상과 분리되지 않기에 사랑이 사랑이 아닌 그저 “자연-스스로 그러함”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도 아닙니다.

사랑의 감정은 사랑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빛줄기와 같습니다.


태양빛이 태양으로부터 나왔지만 태양은 아닌 것처럼, 감정 또한 사랑으로부터 나왔지만 사랑 자체는 아닙니다.


감정은 “나”라는 감각의 프리즘을 통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은 조건을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저 스스로 그러함” 자체이기에 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자기 조건을 제시할 “나”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깊이 고찰해 봅시다. 만약 그 신비의 끝에 닿는다면, 온 세상이 그저 사랑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때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일방적인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입안의 혀처럼 굴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쓴 소리를 하고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움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핸드폰에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멀리 떨어져 묵묵히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보살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 같이 먹고 이쁜 장소 함께 가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외로움을 느끼게 내버려둘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의 근원에 있는 한가지 진실일 뿐입니다.


필요하다면, 야속해 보이는 이와 같은 행동들을 하면서도,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것 자체가 “내가 너와 하나다”임을 드러내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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