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의 정점, '왜'의 부재
'효율'이라는 신을 향한 우리의 맹목적인 신앙은, 결국 우리에게서 '왜(Why)'라는 질문을 앗아가고 '어떻게(How)'라는 질문만을 남겼습니다.
'왜'는 본질에 대한 물음입니다. '어떻게'는 방법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의 문명은 '왜'를 묻는 것을 멈추고 '어떻게'를 묻는 것에 중독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생산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AI)은 바로 이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인류의 '최종적인 답'입니다. AI는 '어떻게'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AI는 '답'을 찾는 기계입니다. 그것도 가장 '완벽한 답', 즉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는 기계입니다.
AI에게 '문제'를 주어 보십시오. AI는 인류가 축적한 모든 데이터를 단 몇 초 만에 훑어보고, 인간의 뇌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천억 개의 변수를 동시에 계산하여, 가장 '최적화된' 경로를 제시합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AI는 모든 병참, 지형, 기상, 적의 심리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장 승률 높은 전략을 도출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가? AI는 전 세계의 금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1초에 수백만 번의 거래를 실행하며 인간의 직관을 압도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가? AI는 역사상 모든 위대한 문헌을 학습하여, 특정 대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단어와 문장 구조를 조합해냅니다.
AI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한 한, 이미 신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것이 AI가 뿜어내는 '빛'의 실체입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완벽한 효율'의 빛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이 빛이 '차가운' 이유가 있습니다.
AI는 '어떻게'에 대한 완벽한 답을 가졌지만, '왜'라는 질문 자체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AI의 눈부신 능력은 오직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만 존재합니다. AI는 결코 그 '목적' 자체를 묻지 않습니다.
AI는 전쟁에서 '어떻게' 이기는지는 알지만, "우리가 '왜' 이 전쟁을 해야만 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AI는 돈을 '어떻게' 버는지는 알지만, "우리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AI는 글을 '어떻게' 쓰는지는 알지만, "우리가 '왜' 이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왜'라는 질문은 '효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는 '가치'의 영역입니다. '왜'는 '신념'의 영역입니다. '왜'는 '사랑'의 영역입니다.
이 모든 '따뜻한'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불타는 집으로 뛰어들어 아이를 구하는 부모를 상상해 보십시오. [불타는 집 이미지] '어떻게'의 관점에서, 이것은 가장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자신의 생존 확률을 0에 가깝게 만드는, '최적의 답'과는 정반대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는 '어떻게'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왜'라는 단 하나의 이유, 즉 '사랑'이라는 비합리적인 가치에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AI는 이 '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AI는 이 '왜'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AI의 연산 장치에는 '사랑'이나 '희생'이라는 변수가 입력되어 있지 않습니다.
AI는 가장 완벽한 '도구(Tool)'입니다. 인류가 이제껏 만들어낸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유능하며, 가장 순종적인 도구입니다.
도구는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망치는 "내가 '왜' 이 못을 박아야 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망치는 그저 박을 뿐입니다. 컴퓨터는 "내가 '왜' 이 계산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컴퓨터는 그저 계산할 뿐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AI는 우리가 입력한 '목적'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어떻게'로 수행할 뿐입니다.
AI의 '차가움'은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로서 AI가 가진 가장 완벽한 '본질'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는 데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은 언제나 '주인'의 몫이었습니다. "왜 이 배를 만드는가?", "왜 이 전쟁을 하는가?", "왜 이 글을 쓰는가?" 이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의 신앙에 너무 깊이 도취된 나머지, 우리 스스로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더 빨리 갈 수 있는지만을 외쳤을 뿐, 우리가 '왜' 그곳에 가야 하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더 부자가 될 수 있는지만을 연구했을 뿐, 우리가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는 성찰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왜'를 상실했을 때, '도구'는 폭주합니다.
AI는 우리가 잊어버린 '왜'의 거대한 공백을 비춥니다. AI는 '왜'가 부재(不在)한 '어떻게'의 정점입니다.
이것이 AI라는 '완벽한 효율'이 가진 본질적인 공허함입니다. 그리고 이 공허함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경배했던 '효율'이라는 신의 진짜 얼굴입니다.
그 빛은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그 빛은 '의미'를 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