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도 낭비하지 않았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제자리일까.
오후 6시 30분, 강남역 지하 승강장. 퇴근길의 서울은 거대한 회로 기판과 같다. 그리고 나는 그 회로 위를 흐르는 전류처럼, 멈추지 않고 어딘가로 전송되어야만 하는 데이터 패킷들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지도 앱을 켠다. 목적지인 집까지의 소요 시간은 42분. 앱은 친절하고 단호하게 명령한다. "빠른 환승을 위해 5-3번 칸에 탑승하세요."
나는 그 명령을 신탁처럼 받아들인다. 이미 5-3번 승강장 앞에는 나처럼 앱의 계시를 받은 신도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다. 텅 빈 옆 칸(1-1번)으로 가면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다. 앉아서 편하게 가는 '과정의 질'보다, 1분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결과의 효율'이 압도적인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열차가 도착하고,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구겨 넣으며 좁은 틈으로 밀려 들어간다. 타인의 날 선 숨소리와 땀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밀도 속에서 나는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한다. 도착 예정 시간 19시 12분.
만약 이 열차를 놓쳤다면? 도착 시간은 19시 19분이 되었을 것이다. 겨우 7분 차이. 인생 전체로 보면 티끌조차 되지 않을 그 짧은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짐짝이 되기를 자처했다.
환승역인 사당역에 내리자마자 '최단 경로 레이스'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좀비 떼처럼, 혹은 잘 훈련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지도 앱이 바닥에 그려준 가상의 파란색 유도선을 따라, 누구도 곁눈질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앞사람의 발뒤꿈치를 밟지 않을 만큼의 최소 거리, 에스컬레이터를 두 칸씩 걸어 올라가는 속도, 개찰구에 카드를 찍는 0.5초의 타이밍.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잠시 멈춤'이나 '딴청'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뒷사람의 진로를 방해하는 민폐이자, 시스템의 흐름을 깨는 오류(Error)이기 때문이다.
나는 1분도 낭비하지 않았다. 최단 거리로 걷고, 최적의 칸에 탔으며, 가장 빠른 환승 통로를 통과했다. 나의 퇴근길은 수학적으로 완벽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시간은 정확히 19시 12분이었다. 앱의 예측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나는 승리자처럼 신발을 벗었다.
그런데 거실 불을 켜고 소파에털썩 주저앉은 순간, 묘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7분을 벌었다. 그래서? 그 7분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기껏해야 소파에 누워 숏폼 영상을 몇 개 더 넘겨보거나, 의미 없는 웹서핑을 하다가 잠들 것이다. 고작 그걸 위해 나는 지옥철 속에서 사람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숨이 차도록 계단을 뛰어올라왔단 말인가.
문득, 내 삶이 이 퇴근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것. 사회가 설정해 준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최단 경로만을 가리켰다. "여기서 쉬어가면 늦습니다." "이 길은 비효율적입니다. 돌아가지 마세요."
나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워 옆길로 새는 것을 죄악시했다. 실패할 권리, 방황할 권리, 우회할 권리를 스스로 반납하고 오직 '정답'인 길로만 달렸다 .
그래서 나는 효율적으로 살았다. 낭비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왜, 내 삶은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을까 .
최적화된 경로에는 '풍경'이 없다. 앞사람의 뒤통수와 바닥의 유도선만 있을 뿐이다. 나는 오늘 집에 오는 길에 핀 꽃을 보았나? 밤하늘의 달은 보았을까? 아니, 오늘 하루 내 기분이 어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은 있었나?
없다. 나는 그저 '이동'했을 뿐이다. 좌표 A에서 좌표 B로, 가장 빠르게 전송되었다.
배달시킨 저녁밥을 씹으며 나는 스마트폰을 켠다. 내일 출근길 날씨와 최적 경로를 미리 검색한다. "내일은 비가 오니 평소보다 5분 일찍 나오세요." 친절한 AI의 조언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실패할 수 없기에, 단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