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인간, 4. 알고리즘이 나를 ‘편집’하던 날

유튜브가 떠먹여 준 영상

by 닥터 F

새벽 1시. 내 의식은 반쯤 수면 아래로 잠겨 있고, 육체는 소파 깊숙이 파묻혀 있다. 유일하게 깨어 있는 것은 오른손 엄지손가락뿐이다.


나는 지금 3시간째 유튜브의 바다를 표류하는 중이다 . 시작은 분명 업무에 필요한 '생성형 AI 최신 트렌드' 영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망막을 때리고 있는 영상은 '1990년대 일본 시티팝 모음'이다.


그 사이의 인과관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지전능한 알고리즘의 설계다. "이 영상을 본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영상" "당신을 위한 맞춤 추천"


5초. 4초. 3초.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화면 하단에는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자동 재생' 기능은 내게 사유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이걸 계속 볼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도 전에, 시스템은 이미 다음을 로딩해버린다.


나는 그저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알고리즘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영상들을 넙죽넙죽 받아삼켰다. 경제 전망을 보다가, 고양이 영상을 보다가, 다시 우울증 극복 영상을 본다.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내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종류의 백색 소음이 필요한지 기가 막히게 파악한다. 그 친절한 큐레이션 덕분에 나는 3시간 동안 한 번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의 취향은 완벽하게 저격당했다.


아니, 저격당한 것일까, 아니면 '편집'당한 것일까.


갑자기 목이 탔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지 않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앞에 서서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충혈된 눈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거울 속의 남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것은 고유한 이름을 가진 '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곳엔 내가 아니라, **'데이터 덩어리(Data Chunk)'**가 앉아 있었다 .


거울 속의 존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잘 분류된 태그(Tag)들의 집합체 같았다.


#서울_거주_30대_남성 #테크_관심 #심야_감성 #생산성_강박 #잠재적_우울


지난 3시간 동안 내가 소비한 영상들은 내 자유의지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 기업의 서버가 나의 지난 기록들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만들어낸 '예측 모델'이었다. 시스템은 나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저 '체류 시간(Duration)'을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자극을 투여해야 하는 반응형 객체로 취급할 뿐이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좁히고, 다듬고, 강화한다.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줌으로써, 내가 다른 세계를 기웃거릴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 나의 세계는 점점 더 선명해지지만, 동시에 점점 더 협소해진다. 이것은 취향의 확장이 아니라, 취향의 감금이다.


나는 거울 속의 데이터 덩어리를 향해 물었다. "너는 원래 시티팝을 좋아했니? 아니면 알고리즘이 좋아하게 만든 거니?"


데이터 덩어리는 대답이 없다. 그저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이 감동조차, 정교하게 계산된 도파민의 작용 반작용처럼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소파 위에는 여전히 스마트폰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유튜버가 "당신이 인생에서 실패하는 세 가지 이유"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화면이 꺼지자,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3시간 동안 나를 지배하던 매끄러운 알고리즘의 세계가 끊어졌다.


적막. 그리고 불안. 연결이 끊어진 순간 찾아오는 이 금단 증상. 하지만 나는 다시 폰을 켜지 않기로 했다.

대신 창문을 열었다. 2025년 서울의 차가운 밤공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매캐하고, 습하고, 비릿한 도시의 냄새. 적어도 이 불쾌한 공기는 내 취향에 맞춰 필터링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데이터가 아닌, 진짜 공기를 폐부 깊숙이 채워 넣었다. 편집되지 않은 나를 되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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