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
"너는 왜 그렇게 '싼티' 나는 걸 좋아하니?"
직접적으로 듣진 않았어도, 눈빛으로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고상하다'고 칭송받지만,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포카를 정리하는 사람은 '가볍다'고 폄하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아, 내 취향이 좀 유치한가? 나도 있어 보이는 것 좀 좋아해야 하나?'
착각하지 마라. 네 취향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아주 불편한 진실을 폭로했다.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계급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다."
이번 챕터에서는 네가 좋아하는 K팝이 왜 사회적으로 '낮은 취급'을 받는지, 그리고 그 프레임이 얼마나 낡고 오만한 것인지 해부해 보겠다. 이 논리를 장착하는 순간, 너를 비웃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찮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취향 존중해 주세요(취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서 취향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
부르디외는 사회를 거대한 '문화적 전쟁터'로 보았다. 사람들은 돈(경제 자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돈 많은 졸부와 뼈대 있는 귀족을 구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원하는 게 바로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이다.
고급 취향 (Highbrow): 클래식, 오페라, 미술관, 난해한 예술 영화. -> "이걸 즐기려면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공부해야 해. 즉, 나는 너희와 다르게 자랐어."
저급 취향 (Lowbrow): 대중가요, 막장 드라마, 만화, 아이돌. -> "이건 아무나 즐길 수 있어. 즉, 수준이 낮아."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문화를 '고급'으로, 대중의 문화를 '저급'으로 규정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이것이 바로 '구별짓기(Distinction)'다.
그들이 아이돌 문화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음악이 시끄러워서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입 장벽이 낮은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자신을 섞고 싶지 않은, 아주 속물적인 '엘리트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니 누군가 네 취향을 비하한다면, 상처받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라. "아, 저 사람은 지금 자기 계급장을 과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정 욕구 결핍' 문제다.
부르디외가 살던 1970년대에는 저런 '고급 vs 저급'의 구분이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세상이 바뀌었다.
현대의 진정한 엘리트는 클래식만 듣지 않는다. 그들은 넷플릭스를 보고, 힙합을 듣고, 아이돌 콘서트에 간다.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문화적 잡식자(Cultural Omnivore)'라고 부른다.
지금 시대에 "나는 클래식만 들어, 아이돌은 천박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 '고루한 꼰대' 취급을 받는다.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능력, 그것이 현대의 새로운 지성이다.
특히 K팝은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다. 루이비통, 구찌, 디올, 샤넬...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K팝 아이돌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모셔간다.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럭셔리 산업이 인정한 '최상위 기호(Symbol)'가 바로 K팝이다.
생각해 보라. 프랑스 귀족 문화를 파는 명품 브랜드가 '천박한 문화'의 아이콘에게 수십억을 주고 모델을 맡길까? 아니다. 그들은 K팝이 가진 '젊음', '에너지', '디지털 영향력'이 낡은 명품 이미지를 혁신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네가 좋아하는 가수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힙(Hip)'하고 '비싼' 얼굴이다. 그런데 방구석에서 "아이돌은 수준 낮아"라고 떠드는 사람의 안목이 맞을까, 아니면 샤넬의 안목이 맞을까? 답은 명확하다.
K팝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는 "그거 그냥 생각 없이 보는 거잖아"다. 이것은 그들이 K팝을 소비하는 방식(수박 겉핥기)이지,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K팝을 '공부'한다. 앞서 말했듯 K팝은 음악, 패션, 영상, 서사가 결합된 복합 콘텐츠다.
세계관 분석: 뮤비 속의 오브제를 찾아내고, 인문학적 상징을 해석한다. (기호학)
음악 분석: 작곡가 라인업을 꿰고, 샘플링 원곡을 찾아 듣고, 장르의 믹스매치를 평가한다. (음악학)
영업과 마케팅: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모아 전략적으로 홍보한다. (경영학)
이 정도면 거의 '학문'에 가깝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입 벌리고 떠먹여 주는 걸 받아먹는 게 아니다. 적극적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재해석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것이야말로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적 아비투스(Habitus)'의 진화형이다.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를 골라내고 해석하는 '고급 정보 처리 능력'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이 치열한 지적 유희를 '수준 낮다'고 말하는가? 멍하니 TV만 보는 그들보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산하는 네가 훨씬 더 '지적인 소비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나를 말해준다. 네가 K팝을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너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너는 '디지털 문법'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너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글로벌 감각'을 공유한다.
너는 '열정'을 쏟을 줄 아는 에너지가 있다.
이것은 21세기 사회가 가장 원하는 인재상과 겹친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 직군을 뽑을 때 "덕질해 본 경험"을 우대한다. 무언가에 미쳐서 파고들어 본 경험, 커뮤니티를 움직여 본 경험은 돈 주고도 못 배우는 실전 스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 취향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나는 이 시대 가장 역동적인 문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 자부심이 너를 더 빛나게 만든다.
누군가 네 취향을 '저급' 취급하며 공격해 올 때, 주눅 들지 말고 이렇게 받아쳐라.
Case 1. "그런 건 애들이나 보는 거지."
반격: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요즘은 루이비통이나 디올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다 K팝 아이돌한테 러브콜을 보내잖아요. 전 세계 트렌드의 최전선이 K팝인데, 너무 예전 시각에 머물러 계신 건 아닐까요?"
전술: 상대를 '고상한 어른'이 아니라 '트렌드에 뒤처진 옛날 사람'으로 만들어라.
Case 2. "나는 클래식이나 재즈가 좋더라. 아이돌은 좀..."
반격: "아, 클래식 좋죠. 저도 좋아해요. 근데 요즘 K팝은 클래식 샘플링도 많이 하고 장르가 엄청 복합적이라 듣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음악을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즐기는 게 진짜 즐거움 아닐까요?"
전술: '잡식자(Omnivore)' 프레임으로 상대를 '편식쟁이'로 만들어라.
Case 3. "그거 다 상술이야. 돈 아깝지 않아?"
반격: "미술품 수집하는 사람들이랑 비슷해요. 저한테는 이 앨범이 작품이고 소장품이거든요. 남들이 볼 땐 종이여도, 제 눈에는 가치가 보이거든요. 안목의 차이겠죠?"
전술: 덕질을 '컬렉팅(수집)'이라는 고급 취미의 영역으로 격상시켜라.
계급은 고정된 게 아니다. 과거에는 재즈도, 로큰롤도, 힙합도 다 '하위문화' 취급을 받았다. '천박하다', '시끄럽다', '불량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것들이 모여 '주류(Mainstream)'가 되었다.
K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왔기에, 변방의 딴따라 음악이 빌보드를 점령하고 전 세계를 흔드는 주류 문화가 되었다. 너는 그 역사의 증인이자 주인공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계급 사다리 눈치 보지 마라. 네가 좋아하는 곳, 네가 서 있는 그곳이 바로 '문화의 중심'이다.
당당하게 말해라. "내 취향은 틀리지 않았다. 너희가 늦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