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
"그런 노래 들으면 머리 안 아파? 가사가 하나도 안 들리던데." "다 똑같이 생긴 애들이 춤추는 게 뭐가 좋다고 그러냐."
명절날 친척 어른들이, 혹은 직장 상사가 혀를 차며 던지는 이 말들. 우리는 익숙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움츠러든다. "아, 네... 그냥 뭐, 스트레스 풀려고 보는 거죠." 우리는 얼버무리며 서둘러 이어폰을 꽂거나 화제를 돌린다.
이것을 팬덤 용어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라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기는 행위. 왜 숨길까? 부끄러우니까. 세상이 내 취향을 '수준 낮은 것', '어린애들이나 좋아하는 것', '공장형 싸구려 문화'로 취급한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로 네 취향이 부끄러운가? 그들이 듣는 트로트나 발라드, 혹은 클래식 음악보다 K팝이 정말로 '열등한' 문화일까?
Chapter 4에서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아니, 틀렸다. 내 취향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급지고 복잡하다."
이번 챕터에서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내 덕질의 '격(Class)'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법을 브리핑하겠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위로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으로 무장한, 아주 우아하고 지적인 '취향의 변론'이다.
(Chapter 4-1, 4-2)
사람들은 흔히 "취향은 존중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취향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오페라를 보고 와인을 마시는 취향 = 고급(High Culture)
아이돌을 보고 콜라를 마시는 취향 = 저급(Low Culture)
누가 이 기준을 정했는가? 부르디외는 그의 저서 <구별짓기>에서 명쾌하게 답했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기준일 뿐"이라고. 그들은 어려운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대중과 자신을 '구별' 짓고 싶어 한다. 즉, 그들이 아이돌 문화를 비하하는 이유는 K팝의 퀄리티가 낮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를 깎아내림으로써 우월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눅 들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비난은 '팩트'가 아니라, 낡은 세대의 '권력 투쟁'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잣대에 맞춰 내 취향을 검열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 잣대를 부러뜨려야 한다.
"내 취향이 낮은 게 아니라, 당신의 편협함이 낡은 겁니다."
(Chapter 4-3)
냉정하게 K팝이라는 콘텐츠를 뜯어보자. 이것은 단순히 '노래(Audio)'가 아니다.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비트를 깎아 만든 음악
최첨단 영상 기술과 미학이 담긴 뮤직비디오
수백 명의 디자이너가 붙은 패션과 스타일링
인문학적 은유와 상징이 숨겨진 세계관(Storytelling)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수행하는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이 모든 요소가 3분 안에 압축된, 현대 대중문화의 집약체이자 '종합 예술(Total Art)'이다.
일반인(머글)들은 K팝을 보며 "정신없다"고 한다.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이 복잡한 정보를 해석할 '문화적 문해력(Literacy)'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너는 어떤가? 너는 뮤비를 보며 세계관을 해석하고, 음악을 들으며 비트를 분석하고, 무대를 보며 디테일을 찾아낸다.
너는 단순히 춤추는 인형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너는 21세기 가장 트렌디하고 복합적인 예술 형식을 '해석'하고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부심을 가져라. 너의 뇌는 그들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문화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Chapter 4-4)
그렇다면 현실에서 "아이돌이나 좋아하냐"는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화내거나, 숨기거나, 무시하는 건 하수의 방식이다.
고수는 '프레임'을 바꾼다. 상대가 K팝을 '가벼운 오락'으로 취급할 때, 너는 그것을 '산업'과 '예술'의 언어로 받아쳐라.
공격: "맨날 똑같은 사랑 타령 노래 아니야?"
반격: "이번 앨범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모티브로 자아 성찰을 다룬 컨셉이에요. 가사 은유가 꽤 철학적인데, 한번 분석해 보실래요?"
공격: "기계음 범벅이라 시끄럽던데."
반격: "요즘 트렌드인 하이퍼팝 장르를 차용한 건데, 사운드 믹싱 기술적으로는 빌보드에서도 인정받는 퀄리티예요. 산업적으로 배울 점이 많죠."
네가 '전문가의 언어'를 쓰는 순간, 상대는 당황한다. '철없는 빠순이'를 예상했는데, 눈앞에 있는 건 '문화 비평가'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취향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해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상이 자꾸만 나를 깎아내리려 할 때, 나를 지킬 '논리적 방패'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챕터를 다 읽고 나면, 너는 더 이상 이어폰 볼륨을 줄이지 않게 될 것이다. 지하철에서도, 회사에서도, 당당하게 내 가수의 영상을 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내 취향이야. 그리고 이건 아주 멋져."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바로 지성적 팬덤이 갖춰야 할 첫 번째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