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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자와돼지 Sep 30. 2019

Don't kill the messenger

어느날 아내가 3억을 사기당했다!(2)

'킬 더 메신저'라는 말이 있다. 나쁜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죽인다는 뜻이다.

옛날 왕들중에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패전한 소식을 가져온 신하를 벌을 주거나 죽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서 나온 말이 바로 '킬 더 메신저'이다. 넓게 해석하면 위기나 잘못의 근원이 아닌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사건의 근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일을 당했거나 그 일의 경위를 전달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를 들어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오히려 처신을 잘했어야지라고 에둘러 비판한다거나, 사기를 당한 사람에게 똑똑하지 못하게 왜 그걸 당했냐고 물어보는 등의 경우이다. 이러한 엉뚱한 질책은 타인이 아닌 가족으로 부터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기 스스로를 하기도 한다. '당한 내가 잘못했고, 못 피한 내가 어리석었고, 알아채지 못한 내가 호구였다' 식의 자아비판이 바로 그런 종류이다.


평상시의 소소한 위기가 아닌 정말 커다란 위기가 닥쳤을때 '킬 더 메신저'효과를 중지시켜야 한다. 특히 타인이 아닌 가족과 스스로를 향하는 책망 또는 질책은 위기를 크게 확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가족으로부터의 책망은 가족관계의 단절과 붕괴라는 위기로 전파된다. 스스로를 향한 책망은 우울증이나 홧병이라는 위기로 전파된다. 사기로 인한 위기는 본질적으로 돈의 위기이다. 그런데 이것이 돈의 위기를 넘어 가족관계를 망가뜨리고, 스스로 다시 일어설 의지를 없애버리는 단계까지 넘어가면 인생 전체의 위기로 확대된다.


아내가 3억여원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고 나서, 이틀 정도 멘붕상태에 있었다. 내 인생 전체에게 가장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한 시기였다. 단 이틀이었지만 거의 1년동안 할 고민과 생각을 했다. 잠을 자며 꿈꾸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생각을 했다.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니 본질이 무엇인지는 더욱 뚜렷해졌다. 사실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 그리고 가족에 앞서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이 잘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인데, 돈 때문에 가족이 해체 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아내와 나는 3억이라는 돈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집을 팔면 갚을 수 있겠지만 집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부터 했다. 어떻게 마련한 집인가라는 생각에 아내는 이혼까지 생각했다. 사기당한 자기 잘못이니 이혼이라도 해서 집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개인회생, 파산 전문 변호사에게 전화 상담까지 받았다. 아내는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며, 신음소리를 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새벽에 갑자기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나는 아내 옆으로 다가갔다. 아내는 "이혼해서 나혼자 빚 갚으며 사는 거는 괜찮은데 오빠랑 떨어져서 살면 내 인생이 너무 비참할거 같아. 그렇게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아"라고 울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잘한것은 아내가 사기당한 것을 알게된 순간 아내를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수천만원 정도였다면 오히려 비난하고 책망했을지도 모른다. 그것 때문에 가족이 잘못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3억여원이라는 큰 돈을 생각하니, 아내를 책망하면 정말 자책해서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서로 탓을 하다가 가족 해체라는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 같았다. 잘못은 사기를 친 사기꾼들에게 있는 것이지 아내에게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회사 선배의 조언을 받았다. 그 선배는 아내가 부동산 사기를 당해 큰 돈을 잃을 적이 있었다. 게다가 본인의 명의까지 도용되어 억울하게 부동산 사기 피의자로 몰려서 재판까지 받았다. 그 선배가 나한테 해준 조언도 '킬 더 메신저'의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기를 당하고 재판과정까지 약 1년여 동안 아내분과 서로를 탓하며 전쟁같은 부부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선배나 선배아내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서로 잘 살려고 했던 것이고, 나쁜 놈들은 사기친 놈들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부부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지금도 서먹하다고 한다. 선배 본인이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간의 관계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근원이 가족인데, 사기로 인해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정말  긍정적인 스타일이고 자기 고집도 세고 자존감도 높다. 그래서 어느 순간 기가 살아난 아내를 보면 벨이 꼬이기도 한다. "잘못은 그놈들이 한것인데 내가 뭔 잘못이냐?" 하면 바로 "당하는 중간에 나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한게 잘못이다"라고 쏘아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또 기죽어서 우는 모습보다는 기살아 있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부처와 같은 인내심을 가지고 참는다.


Don't kill the messe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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