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일 단상에 부쳐
지난 1월 4일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서울시교육청 관내 초등학교 신입생 #예비소집이 있었다. 필자는 현관 앞에서 취학통지서를 확인하고 접수 장소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략 난감했던 상황 몇 가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1.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 두 명과 함께 왔는데 취학통지서를 한 장뿐이다.
"혹시 입학하는 자녀가 두 명인가요?"하고 물었더니
"한 명"
예상했던 대답은 "한 명이요"였는데 아주 짤막하게 '한 명'이라고 하니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공공기관 안내자의 공적 질문에 거리낌 없는 단답형 답변을 곱씹으며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구도가 떠올랐다. 학교의 친절이 신뢰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을이 되는 사회 구도라고 하면 과한 것인가?
2.
취학통지서 하단에는 "자녀와 함께 동반"해야 한다는 글씨가 큼직하게 써 있다. 그럼에도 취학 대상 학생 없이 취학통지서만 들고 오신 분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 같이 "애는 지금 학원에 있어요."라고 답변한다.
자녀를 동반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경우가 절반, 확인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냥 온 경우가 절반이었다. 이런 경우 화상 통화로 해당 자녀의 "안위"를 확인해야 하는 프로토콜이 있는데 모두 "학원"에 있기 때문에 지금 통화가 안된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까지 학원에 있는 게 입학하는 학교에 방문하여 교실도 둘러보고 돌봄 관련 상담, 학교 입학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3.
학교 현관에 들어설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아이가 이었다. 보호자가 안내와 접수를 기다리는 사이 현관 로비와 복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다 혼자 넘어져 엉엉 울었다.
함께 안내를 하던 선생님과 주고받은 눈빛은 '어쩌냐'였는데 속으로 생각한 것은 저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제지를 하면 보호자는 어떻게 나올까,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넘어져서 그렇지 만약 누구랑 부딪혔거나 시설 등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직은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니 그냥 조용히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그런 것들이었다.
2023년을 맞는 학교 단상
학생수는 줄고 있고 학급당 학생수는 22명 수준인데 40명 넘게 있을 때보다 곱절 이상 힘들다는 건(개인적 경험상)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잡다단해졌다는 것이고, 요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인권에 대한 인식도, 법제도적 규제도 강화되었지만, '문화'의 힘은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자식 내 맘대로 학대도 방임도 아닌데, 너희가 하는 건 다 학대고, 방임이다’라는 식의 분위기가 너무 무섭다.
이 동네 애들이 다 어렵고 힘든 형편이라 애들을 야단치지 못하고 좋은 말로 하면서 그냥 그냥 넘어갔다는 누군가의 연민 어린 말을 들으면서, 들어야 할 말을 못듣게 하는 것 역시 방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들어야 하는 말을 권위를 갖고 차분히 해 주면 되는 거다. 그게 점점 불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고, 이는 그 짐을 미래세대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거 같아 안타깝다. 어느새 학교는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그냥 큰 문제만 생기지 않는 정도로 데리고 있다 올려 보내면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말해 봐야 듣지 못하고 '교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심어주는데 누가 나서서 그런 쓴말들을 할까.(생기부 기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것은 협박인가? 간절함인가?
"아버님, 제가 아버님을 아동학대 방임으로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길고 긴 인고의 시간과 아침을 깨우는 전화, 이런 저런 연결의 매개인 노릇을 하다가 하다가 안돼서 2학기 개별화회의에 오신 보호자에게 저렇게 말씀드렸다. 함께 하던 특수 교사가 화들짝 놀라는 게 생생하게 전해졌다. '저렇게 심한 말을?' 그러나 ‘방임’의 징후들은 너무나 분명했다. 5학년이지만 인지, 언어, 행동 발달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라 지속적인 설득과 강권으로 특수교육대상 진단을 받았고 지적장애로 특수교육대상자가 된 아이였다.
지난한 대화와 협상의 과정이 있었지만 여하튼 그 후 '상습 지각'은 사라졌다. 간혹 1-5분 늦기는 했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제 시간에 와야 아이의 학교생활도 매끄럽게 진행된다. 거의 매일 10분 20분 늦게 와서 고개 푹 숙이고 들어오는 데 어떤 긍정적 마인드가 형성될 수 있겠는가? 물론 전 학년에서 결석이 잦았다고 했던 다른 아이에게는 늦게라도 오면 '지각했는데도 학교에 왔다는 건 대단한 거'라고 칭찬해준다. 이러면 혹자는 차별대우라고 할라나?
교사로서 해야 할 말, 했어야 하는 말을 전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 되는 시대에 학교와 교사는 무엇인가? 나를 지켜준다고 착각했던 '안위'와 헤어질 결심과 함께 2023년은 해야 할 말은 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앞으로 펼쳐질 모험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