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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Apr 21. 2023

[에세이] 선명과 비선명

나 스스로 위로하는 김에 너에게도 하기

우리는 선명한 것들을 좋아한다. 

선명하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TV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스마트폰도 점점 더 선명해진다.

소리도 점점 더 선명해진다.

선명하다는 것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선명하게 느낄 때 우리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많이 알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선명한 것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에 푹 빠져 살고, 그것의 자신의 인생이고 전부인 듯 살아온 사람들.

하나의 목표를 보고 끝없이 달려가던 사람들에게는 '꿈을 이룸' 이라는 단계가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억지로 선명하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사진에 감성을 담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그레인(Grain) 효과'를 이용한다. 

옛적의 필름 사진처럼, 픽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사진은 변하게 된다.

색과 색 사이의 대비가 더 심해져,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이 힘을 잃게 된다. 


사람들은 음악에도 이런 '짓'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짓'을 해서 만든 로우파이(lofi) 음악도 하나의 장르처럼 인정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라디오의 소음을 섞고,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의 아날로그한 소음을 섞는다. 

또한 최근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에서는 일부로 원 음원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감아서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삶이 비선명했다. 항상 나의 삶은 비선명했고, 분명하지도 않았다. 

너도 그럴 수 있다. 행복이던 불행이던 우리는 더 오래 배우고 더 늦게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적게 반복하고, 더 많이 생각한다. 

몇달전만 해도 매일 반복하던 운동을 지금은 끊었다. 

너가 퇴근하고 너무 재밌어서 열중했던 그 취미는 이제 하다가 말았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우리의 관계 또한 그렇게 변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도 나도 별로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끈기가 없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지금 10년째 해오던 일을 그만두더라도, 당장 저 멀리, 저 멀리의 나라로 떠나더라도 .

우리의 인생은 선명할 필요가 없다. 

선명했던 것을 더 선명하게 만들면 혁신이 되고 자본주의는 더욱 큰 돈을 준다.

그러나 예술은 때로 일부러 깨끗하던 것을 더럽히고, 실용적인 것을 교체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더 예술적'이게 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음악과 사진에 새로운 감정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이 한 마디로 요약될 필요는 없다.

나도 너도, '최고의 000'일 필요는 없다. 

나를 글로 표현한다면, 나는 순서가 사라진 3000쪽짜리 국어사전일 것이다. 나의 찾고 싶은 순간을 너는 찾을 수도 없다. 누구도 찾을 수 없다. 나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끝낼 필요도 없다. 당신이 지금까지만 읽고...


당황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그러니 너도 상관없어라. 

삶도 예술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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