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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Jan 21. 2024

그저 한 아이

짧은 소설

걱정할 것 없음을 안다. 내일도, 오늘도. 돌담길보다 작은 키로 돌담길 사이 좁은 길을 걷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다. 너머의 집도, 어중간하게 세워진 마당 위 자전거도, 물기가 채 다 마르지 않은 양동이도, 퍼질러진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갈색빛의 돌들과 맑은 하늘의 구름만이 시야에 들어올 때는 어린 마음에 생기는 사소해보이는 걱정들도 잠시나마 잊혀진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떼아 할머니와 리아 할머니가 대화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곧 돌담길을 빠져나와 시장이 보인다. 심부름 없이 편한 몸으로 걷는 길에는 항상 바람에 한기가 서려있다.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이 한기에 담겨 내 머리속을 똑똑 두르리고는 한다. 할머니의 가게에 다다르기도 전에 할머니의 눈에 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얘야, 거기 바구니 2개와 다 마른 도마 하나만 좀 가지고 오렴." 


할머니에게 대답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대답을 하려면 크게 소리치듯이 말해야 할 뿐더러,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차피 눈 앞에서 할머니가 부탁한 일을 하고 있는데, 대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대답하지 않는 것 조차 할머니의 나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나를 할머니를 부탁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니까. 빈 바구니 2개에 할머니는 방금 팔린 사과와 감을 채워 담았다. 가득 바구니를 담고, 쏟을까 불안한 흔들림으로 할머니는 매대로 걸어가 바구니를 조심스럽게 내려 놓는다. 아무리 위험해보이는 모습이라도 할머니는 과일 하나를 빼고는 절대로 넘어뜨리거나 흘리는 일이 없다. 과일 하나가 넘어져서 패이거나 상처가 나면, 그럴 때 그 과일은 도마에 올라가 시식용으로 쓰이거나 나의 입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가게 앞에 앉아 할머니와 같이 있는 것의 나의 일이었고 생활이었다. 내가 직접 계산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할머니는 절대 나에게 계산을 맡기지 않았다. 내가 돈을 주고 받으며 만지는 것이 싫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믿을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른다. 그런 것들을 묻지 않는 것도 할머니와 나 사이의 정해진 약속이다. 할머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는 무뚝뚝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다부지게 늘어놓는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러한 사람들과 거리는 가까웠고, 오히려 신뢰를 주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많이 늘어놓는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많이 아프다."


엄마는 많이 아팠다. 항상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주말에는 항상 아빠와 병원을 갔다. 평일에는 집에서 덩치가 크고 얌전한 고양이처럼 가만히 있는 듯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망부석처럼 앉아 있다.' 라는 표현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러한 표현에 엄마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엄마는 분명히 집에만 있었고 가만히 있었지만, 분명히 생생하게 존재했다. 엄마는 누워 잠들어 있을 때가 많았고, 밥을 먹을 때,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고요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그럼에도 생동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더 이상 아픈 엄마에게 짐이 아닌, 도움이 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항상 할머니의 가게에 있었다. 그건 엄마의 뜻이기도 했고, 할머니의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그러한 결정에 불만도 기쁨도 없었다. 만약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작은 도움을 주며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불만도 기쁨도 없이 그대로 따랐을 나였다. 가끔 가게에 있다보면 이따금씩 목소리가 동시에 잦아들며 갑자기 고요해지는 때가 있다. 누군가가 먼저 조용히하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는 들어본 적 없던 이상한 소리가 났던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식당에서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시끄러운 시장에서는 고요해질 때의 적막이 가장 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의도하지 않은 적막 같은 것으로 웃음이 나올 때 걱정할 것이 가장 없음을 안다. 그렇게 적막이 찾아오면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들리게 되는데, 그 때 그 소리가 나는 듣기 좋은 것 같다. 우리 동네는 더 깊숙한 시골로 들어가는 길목 쯔음에 위치해 있다.(물론 나도 그렇게 들었을 뿐, 더 깊숙한 시골에 가볼 일은 없었다.) 더 깊숙한 시골을 지나 기차길을 쭉 따라가면 다른 도시로 연결된다고 들었다. 그래서 가게에도 항상 오던 사람들만 오던 것이 아니라, 길을 들러가는 외부인들이 많이 찾아오곤 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할머니는 깎아주지도 돈을 바가지 씌우는 적이 없으면서도 절대 가격을 미리 적어두지 않고, 손님들이 물어봐야 이야기 해 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마음 속에 정해진 과일의 가격이 확실히 있었다. 그럼에도, 절대 가격을 미리 종이에 써 두지 않았고 누군가의 애타는 흥정에도 단호했다. 그래도 나는 절대 그것에 대해서 할머니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말이 없는 할머니가,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 옆이나 가게 언저리에 앉아있었고, 계산하는 사람과 할머니를 번갈아 보며 관찰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취미가 되었다. 우리가 이런 대도시와 가까운 시골마음에 살게 된 것은 오로지 엄마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원래는 할머니도 함께 도시에 살았다고 했다. 엄마가 갑자기 아프게 되자, 시골에서 안정을 취할 필요가 생겼고, 주말에는 병원에 가야했기에 아빠가 일하는 도시의 가까운 시골에 살 게 된 것이다. 이 동네에서의 기억이 대부분이기에, 나에게는 이러한 일상이 지루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그랬기에 큰 감흥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바깥에서 보기에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순간들을 마음에 심었다. 


"얘야, 걱정할 것 없어."


나는 걱정이 많았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리가 아질하게 아파오는 걱정은 아니었다. 그저 표정과 행동은 평안하고 몸에 반응이 오지는 않지만 머릿속에서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구슬 방울 같은 걱정들이었다. 큰 걱정은 나에게 없었다. 책임질 것도 없었고, 해야하는 의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는 아무렇지 않는 작은 걱정도 걱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돌담길의 돌들이 바람에 모두 무너져서 내가 건너는 순간에 깔리면 어떡하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생각하기도 힘든 걱정이라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걱정일 수 있다. 그런 아무렇지 않은 걱정 구슬과 아무렇지는 않지만 중요하지 않은, 빼먹은 숙제와 같은 걱정들을 엄마는 가만히 고요하게 있으면서도 잘 느꼈다. "얘야,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우리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내가 먼저 걱정을 털어놓지 않아도(물론 그런 기억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지만) 엄마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내가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에도, 전혀 걱정하는 마음이 없을 때에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엄마의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말로 걱정에 가득한 마음일 때면 그러한 엄마의 조용한 말투가 위로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몇없는 소중한 순간을 호기심으로 날려버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과일들 중에 알록달록한 방울토마토를 가장 좋아했다. 작은 방울토마토들이 나의 걱정 구슬이라면 금방 다 먹어서 없애버렸을 것이다. 탱글한 방울토마토를 깨물어 터트려 먹는 그 느낌을 나는 좋아했다. 처음에는 입 안에 방울토마토를 넣고 그대로 돌돌 돌린다. 돌아가던 방울토마토는 침에 젖어 껍질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난다. 그 때 방울토마토를 깨물면 톡 하고 터지는 느낌, 그리고 갑자기 확 달아오르는 단 맛. 그런 느낌을 즐겼기 때문에 나는 방울토마토가 좋았다. 할머니는 덩치가 컸고, 엄마도 누워있었지만 누워있는 판다처럼 나에게는 컸다. 그래서 과일 중 가장 작았던, 그럼에도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방울토마토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개 빼먹어도 할머니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고. 




나를 한 가지 가장 항상 옥죄었던 건, 옥죄었던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강가에 마음대로 가는 것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은 강가에 가서 놀기도 했다. 주말이 끝난 후 월요일만 되면 우리들은 주말에서 한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도시에 간 것은 부럽지 않았지만 강가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만큼은 부러웠다. 사람들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것보다 닿을 듯 말듯한 것들을 가장 부러워하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강가에 놀러가는 것이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 가서 노는 것 또한 절대 닿을 수 없는 것 같은 게 아니었기도 했으니까. 강 주변까지 수풀이 우거질대로 우거진 좁은 길을 걸어 들어가, 강가에 비친 건너편을 보며 노는 것. 아니 그저 강가 주변에 있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절대 허락해주지 않았다. 십여년 전 강가에서 놀다 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죽었던 아이가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가의 깊이는 처음에는 아주 완만하다가 우리만한 아이들의 가슴 높이로 물이 찰 정도가 되면 갑자기 깊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물에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약속하고 여러번 허락을 구했지만 강가에 만큼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여러번 말했고 크게 불만에 차 소리칠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차분했고, 엄마 또한 고요할 뿐이었기에 그저 나에게는 참아야 하는 대상이 될 뿐이었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을 나이였던 더 어린 시절, 아빠와 같아 강가에 갔던 적이 있다. 강 건너의 언덕은 물에 반사되어 비쳤다. 그리고 군데군데 햇빛에 비친 햇살이 눈을 부시게 해, 실제로 강 건너의 언덕보다, 물에 비친 언덕이 더욱 아름다웠다. 미술 시간에 그리는 그림을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 아이들은 노란색 색연필로 다섯개의 뿔을 가진 별 모양을 그린다. 어떤 아이들은 피자를 자르는 모양처럼 줄 네개를 돌려가며 별을 그리기도 했다. (우리들은 꼭 도화지 자체를 돌려가면서 줄 4개 모양의 별을 그렸는데 왜 그래야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별 그림들 처럼 햇빛은 강에 비쳐 별 모양이 되어 언덕을 예쁘게 꾸며주었다. 물을 흐르면서 언덕을 구부리고 펴고 반복했지만 그것은 언덕이 살아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강은 언덕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였다. 언덕에서 바라본다면 나에게도 강이 생명을 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러 개의 동화책 속에는 강에서 낚시를 하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엇다. 어떤 동화책에서는 강가에 있는 작은 배를 타고 아빠와 아들, 그리고 곰 한마리가 같이 낚시를 하기도 했다. 동화 속 곰 아저씨는 (아저씨였는지 아주머니였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낚싯대를 갈색의 거대한 손으로 야무지고 능숙하게 잡고 있었다. '손바닥에 있는 젤리 같은 것으로 꽉 낚싯대를 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한다. 그런 곰 아저씨가 만약 나랑 배에서 같이 낚시를 하기로 약속한다면, 나는 무조건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를 넘게 모아서 가져다 줄 것이다.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는 곰 아저씨에게는 너무나 적은 양이겠지만, 방울토마토를 좋아할 지 싫어할 지 잘 모르기 때문에, 먼저 한 바구니를 주고, 좋아한다면 큰 토마토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곰 아저씨는 위에 흰색과 초록색이 번갈아있는 넓은 줄무니의 티셔츠를 입고 있고 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그러한 동화들을 보면서 나의 강에 대한 소망이 커졌고 그만큼 강가에 가고 싶었고 물에도 들어가고 싶었고, 참기도 어려워지고는 했다. 가끔 동네에서 보이는 너구리들을 볼 때가 있었는데, 너구리들은 뭐든지 물에 씻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그래서 그런 너구리들 중 나를 멀뚱히 쳐다보는 너구리들을 보면, 멀리서 마음 속으로 말을 걸곤 했는데, 그 질문은 '너는 강물에 뭐든 씻어 먹니?'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강에 대한 욕구는, 주말에 아빠가 집에 와 네 가족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종종 반찬거리가 되고는 했다. 할머니는 내가 강에 계속 가고 싶어한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너무 가고 싶은 것은 아니라며 빨리 이 얘기를 그만하고 싶어했지만,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왜 강에 가면 안되는지, 혼자가 아닌 여럿이어도 안되는 지 반복해서 이야기를 꼭 하실 뿐이었다. 그 이유를 다 듣고 나서야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까 그게 내가 가진 많은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그런 사소한 걱정을 가지고 있던 날들 중 어느 날은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네가 강가에 가기를 그렇게 좋아하니, 언제 한 번 꼭 바닷가에 데려가 줄게. 바닷가는 강가보다 훨씬 더 볼만하단다." 

"하지만 강가에는 강 건너의 모습이 비치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은걸요. 지루할 것 같아요" 

"그렇지. 그렇지만 대신 하늘과 하늘의 구름이 비친단다. 밤에는 달과 별도 비치는 걸." 


그때부터 나는, 바다에 가고 싶었다. 아니, 내가 바다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건 마치, 내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죽을 직접 끓여주었을 때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드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기쁜 감정과 같다. '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파도가 치고, 하늘이 비치는, 파랗고 하얀 바다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한 번은 학교 미술시간에 바다를 그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가보고 싶은 장소를 그리도록 했고, 3주 동안 꾸준히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2주째가 되었을 때 교실을 돌아다니던 선생님은 내게 묻기를, '너는 언제 그릴 생각이니?'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바닷가에 나를 그릴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의 말 속에는, 당연히 나를 그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그리지 않겠다는 말을 해봤자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저 곧 그릴 거라는 듯이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의 걱정이 하나 또 쌓이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는 주가 끝나는 때까지, 나는 나의 모습을 그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나를 그려야 했지만, 이건 내 그림이었다. 내 마음대로 그리는 나의 그림. 나의 그림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한다고 배웠고, 정말 나의 그림이라면 내 모습은 바다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나는 바다 한 가운데 멀뚱하게 나를 그렸다. 그림 속 나는 마치, 바다를 걷는 것 같았다. 그것도 평지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것처럼, 바다 위에 아무렇지 않게 서있는 내가 그려졌고, 나는 그저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는 아이가 되는 것으로 나의 걱정은 정리가 되었다. 바다에는 내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바다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머리 속에 담긴 바다는, 그림 책에서 삽화가가 멋지게 그려놓은 바다의 이미지를 닮았다. 바다는 파란 빛을 띄기도 하고, 약간의 짙은 초록 빛을 띄기도 했다. 해변은 검정색 돌로 가득할 수도 있었고, 고운 모래가 가득한 금색 빛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돌담길을 생각하며 검정색 돌로 가득 해변의 모습을 채웠다. 내가 그린 해변은 그저 짙은 머리카락을 그린 것 같이 부자연스러웠지만 나의 머리속에는 완벽한 바다였다. 나는 내 그림을 보고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 물론 바다에 바보같이 떠 있는 나만 지운다면. 돌 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나는데, 나의 걱정들도 돌이나 바위 같은 것이었다. 마치 나의 걱정이 쌓이는 것은 주변의 돌과 바위를 모아 쌓기 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넓고 평평한 바위는 가장 아래에 놓는다. 점점 덜 넓고 덜 평평한 바위로, 중간 크기의 돌로 갈 수록 위로 쌓여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위로 어느 돌도 쌓을 수 없을 뾰족한 돌들이 놓이게 된다. 이런 시시한 놀이를 하면서 가게에서 지루한 시간들을 때우곤 했는데, 나의 걱정들도 이런 돌들 같았다. 뾰족하면서 주먹같이 동그란 돌들처럼 날카로운 걱정들은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머리속을 하루종일 갉아먹고 나를 괴롭혔다. 가게에 앉아 할 것 없이 가만히 있을 때 더욱 내 머리를 아프게 했고 그건 점점 내 마음까지 아프게했고, 짜증을 나게 했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다른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느라 이리저리 더 바쁘다고 했는데, 나도 그랬으면 걱정들을 잊을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 뾰족한 걱정들은 다른 걱정들도 다 잊게 하고 나에게 계속 말을 시키는 선생님들처럼 나를 성가시게 했다. 그럴 때는 엄마의 '걱정할 것 없어.'하는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에게 떠 드리는 물이 컵 안에 심하게 흔들려 내 손에 쏟게 되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날카로운 걱정이 다 해결되고 사라지면, 거대하고 항상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나의 마음을 쿵쿵 두드리는 걱정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매일 할머니와 가게에 가만히 있어도 나는 괜찮은 건지, 강가에는 정말 몰래 가보지 않아도 괜찮은건지 같은 걱정들이다. 그런 걱정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어렵고 복잡해져서 풀 수 없게 되었다. 엄마가 더 이상 없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더 커져서, 엄마가 없으면 나는 불쌍한 존재인건가 하는 질문부터, 불쌍하다는 건 무엇인가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한 걱정들은 내가 선생님에게 반하는 대답은 하지 않게 되었고, 할머니에게 떼를 쓰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조금씩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럴 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뜻인가 하는 걱정도 같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나는 바다에 있다. 넓은 바다의 한 가운데 있다. 모든 것들 내려놓고 나는 바다의 한 가운데 있다.

나의 울음도, 속 안에서 흐르는 눈물도 배의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볼 때면 너무 한없고 가치 없는 것이리라 느낀다. 그런 한 없이 작은 존재라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위로했고 안정하게 했다. 바다에 온 이유는 그게 아니지만, 바다에 와보니 그런 걸 뭐. 나는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일하고 쉬고 웃고 먹고 자는 것,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몇 없는 이 작은 배라는 점. 사람이 몇 없다는 점이 가장 좋은 작은 배. 배에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바다 위에 있다는 것이 좋다. 배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바다에 살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지탱하는 도구일 뿐이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에서 한 가운데 있기 위해 배를 타야했고, 나에게 그 배를 타야할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다. 일하며 보람 같은 것도, 미래에 대한 고민과 잘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시간을 보내며 생계를 유지하며,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렇게 지낸 지 반년 쯔음 되었을 시점에, 폭풍우가 힘쎄게 나를 밀쳤고, 내가 폭풍을 잠재워야 했던 날, 그 날 나는 밤 바다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날씨에 밤 바다에 빠진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 밤 바다에 빠졌고, 허우적 대기를 잠시, 몸에 모든 힘을 빼고 흙의 따뜻한 부스러짐과 햇살의 느낌, 수풀 잔디 위 누워 맞던 차가운 잎의 촉감을 느꼈다.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그런 생각이었을 뿐, 고통과 슬픔, 괴로움, 미움, 후회는 없었다. 그저 공허함을 느꼈을 뿐, 바다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며 무엇하다 내 볼을 스치는 것 없이 바다는 텅 비어있었고, 내 마음도 텅 비어버렸다. 그렇게 흙의 느낌, 수풀 속에 누워 맞는 느낌을 느끼다가도, 운석이 지구에 부딪히는 책을 보았던 상상을 하며 몸이 뜨거워지는 것도 느꼈다. 그리고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 때 쯤, 나는 눈을 떠 바다를 걷기 시작한다. 바다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내 눈은 바다 속에서 떠 졌고, 내 발은 바다의 바닥을 딛고 걷기 시작했다. 낮고 굵은 목소리를 내는 듯 하는 바다의 소리가 내 두 귀를 한껏 자극해 온다. 나는 푸르면서도 검푸른 위를 보고, 바다의 모래를 발로 슥 슥 긁으며 걷는다. 모래를 걷어내며 발을 슥슥 밀어내며, 그렇게 걷는 느낌은 썩 좋지 않다. 모래가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걷는 것이 불편해지지만 보이는 앞을 향해 곧이 곧대로 걷는다. 


10분쯤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한참을 걸었을까. 멀리서 한 존재가 반대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물 속에서 시야는 매우 짧아져 당장 30초 걸음걸이의 뒤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금세 다가온 존재, 나의 어릴 적 소꿉놀이를 하던 친구였던 한 아이가 내 옆을 걸어 지나간다. 걸어 지나가며 나를 밝은 얼굴로 쳐다본다. 그리고는 지나간다. 아이에게는 빛이 난다. 물 속이라면 이런 빛이 나는 걸까 하는 오묘한 밝기의 빛으로 감싸진 한 존재. 바다 속에서 이런 것이 가능한 지 몰랐다고 느끼면서, 다시 나는 계속 걷기를 반복한다. 걷기를 반복하다 큰 물체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곧 큰 물체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내 옛 집. 내가 어릴 적 살던 집. 집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초록색 나무와 다홍색 나무, 그리고 짙은 갈색의 나무가 어우러진 내 옛 집. 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내 뒷 얘기를 하던 1층, 내 방이 있던 2층이 있다. 나는 올라가지 않고, 그저 1층에서 옛 집을 구경했다. 내가 떠날 때와 똑같은 집이 바닷 속 내 길목에 나타났다. 그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신기한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 나의 느낌이 신기할 뿐이다. 이제 다 걸은 것 같다. 나는 한 쪽에 보이는 돌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는다. 양 손을 모아 내 머리를 그 위에 괸다. 물이 흐르는 촉감이 느껴진다. 살짝 나를 밀어내다가도 팔짱 사이를 지나가는 물의 촉감. 내 삶의 소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소중한 것은 없지만, 내가 그 당시 소중하다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느꼈던 나로 잠시 돌아가본다. 물의 촉감이 느껴진다. 나를 밀쳤다가도 다시 당기는 물의 움직임을 느끼며, 내가 열망했던 작은 장난감과, 내 집에서 내가 열망했던 작은 친구와의 놀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느끼는 돌담길에 둘러쌓인 듯한 길목에서의 빠른 바람. 소중하다고 느꼈던 작은 돌멩이와 그 위의 달팽이까지. 소중한 것을 생각하며 물의 어부바에 점점 잠에 빠져든다. 잠이 들고, 작은 빛이 새는 어두운 공간에 들어가는 듯하게 잠에 깊이 빠진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얼마나 이상한 순간들이었는가. 


햇살이 느껴진다. 밝은 빛이 눈꺼풀을 뚫고 들어온다. 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를 툭툭 치며 깨우고 있다. 밝고 뿌연 빛. 그리고 햇빛에 건조된 좋은 냄새. 기분 좋은 배고픔. 그렇게 깨어난다 

























나는 배에 타있다


나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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