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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fe of ease Aug 06. 2023

책 : 부끄러움 - 아니 에르노

실존적인 부끄러움에 대해


2023년 초, 아니 에르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책을 고를 때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읽을 것인지 가장 먼저 고른다. 소설인지, 교양과학서인지, 역사서인지 등등. 그 다음에는 그때마다 다른 기준과 직감으로 책을 선택하는데, 여러 기준 중 최근 수상한 작가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나의 방법 중 하나이다. 사실 소설을 고를 때, 책의 내용을 보고 선택하거나 또는 내가 좋아할 지 그렇지 않을 지 훑어보는 방법도 있을테지만 그런 방법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수상한 작가의 책을 많이 참고하는 건, 수상했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책 랜덤 뽑기를 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사위원들의 취향과 내 책 취향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느껴서이기도 하다.)


아니 에르노의 책을 둘러보던 중 부끄러움이라는 책을 골랐다. 그녀에 대한 어떤 배경지식도 없던 채로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알게된 내용이지만, 아니 에르노는 소설가가 아닌 작가와 같은 인물이었다.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 속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이었다. 모든 그녀의 책들은 그녀의 삶과 체험을 관통하고 있다. 천천히 산책하듯이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빠르게 걷는 것처럼, 또는 숨차게 달리듯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숨차게 달리듯이 사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책을 쓰는 행위는 달리다 잠시 멈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과 같다. 


자신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다른 부끄러움과 구분하면서 자신의 어깨에 매인 삶의 무게를 편한 자세로 짊어지려는 것 같다. 120 페이지 정도 되는 짧은 이야기 속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한 사건에 투영하면서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숨 쉬는 행위를 '좋아한다','싫어한다' 라고 표현하는 의미가 있을까. 그저 살기 위해서 쉬는 것이니까. 책 속의 한 부분을 쪼개면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 


 (그해 여름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나는 내가 '그제서야 나는 알게 됐다'라든지 '나는 ~를 깨달았다' 라고 쓰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런 단어는 체험한 상황에 대한 명징한 의식이 있음을 상정한다. 거기에는 이 단어들을 모든 의미 외적인 것에 고정시키는 부끄러움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무거움, 그 무화 작용을 내가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최후의 진실이다.

  그것이 글을 쓰고 있는 여인과 1952년의 어린 여자아이를 연결하는 끈이다    ‥‥)


- 본문 120p-


 '나' 자신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에 대한 실존을 감각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다른 이들보다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오는 부끄러운 감정에서 내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의식하는 '나'를 긍정한다.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나'를 깨달은 순간,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짓눌린 존재가 아니다. 나는 '부끄러움'을 밖에서 바라보며 부끄럽다는 '느낌'으로 '부끄러움'과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부끄러운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다. 결국 '부끄러움'이 내 실존을 긍정하는 도구인 동시에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내 삶의 한 지체이기도 하다. 


사람의 삶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내 마음일까. 

'내 마음대로'라는 마음이 이렇게 생겨먹게 된 것 조차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다.

내 부정적인 감정에서, 나의 욕심에서 한 걸음 멀어져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도, 모든 감정과 모든 순간들이 중력처럼 나를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6월 일요일의 사건과 여행 간에는 시간적 관계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건 후에 일어난 사건은 앞선 사건의 그늘 아래서 체험되는 것이다. 사건의 연속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 본문 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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