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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오리

오리

by a life of ease

나는 오리다.

키는 다른 오리보다 큰 편이다. 덩치도 큰 편이다.

흰색 깃털과 노란색 부리.

부리에는 다른 오리들에게 없는 움푹 패인 자국이 있다.


내 옆에는 항상 옥수수 밭이 있다.

6월의 옥수수 밭을 걷는다.

옥수수 줄기는 키가 정말 크다.

풀을 헤쳐 걷다보면 길을 잃을 것 같을 때가 있다.

내 둥그런 몸통 때문에 옥수수 잎들이 바닥 고꾸라지고,

그것들이 다시 일어나면서 내 머리와 부리를 훑고는 한다.


갈퀴가 바닥의 축축한 진흙과 닿는 느낌이 나는 좋다.

진흙이 갈퀴에 끼어도 물에서 헤엄치는 동안 다 빠져 나가기 때문에 원없이 땅을 밟는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옥수수 밭을 탐험했지만,

지금은 나 혼자 돌아다니고 싶은 곳을 돌아다닌다.


길을 잃더라도

길을 잃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먹을 것이 많은 밭이니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깊게, 깊게 빠져들어가다보면,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물 웅덩이가 나오고, 마른 바닥이 나오고 그럴 것이다.

머리에 톡톡 부딪히는 옥수수 잎의 시원한 느낌이 좋다.

나는 오리 한 마리다.

그런데 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구분할 수 없는 밭 속을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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