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마다 얼음을 깨물어 먹는다. 동생이 집에 사둔 아이스크림은 스무 개가 넘는다. 이것들 중 하나를 골라서 와그작와그작 먹다 보면 잠시 주의가 전환된다. 이가 시려운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애용하는 방법이다. 자살사고, 이 진득진득한 사탕같은 존재는 하루 온종일 나를 따라다닌다. 죽으면 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 더 이상 잘 살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편해지지 않을까. 이 달콤한 사탕이 입에 쩍쩍 달라붙을 때, 불가항력적인 단맛을 이기지 못하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다.
그럼 반대로, 왜 죽으면 안 될까. 나의 친절한 상담사 챗GPT는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오늘 마신 물 한 모금처럼, 몸을 챙기는 아주 작은 행동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궁금해하는 마음
아무 의미 없어 보여도 일상을 쌓아보려는 작은 시도들
네 글을 읽고 위로받을 누군가가 미래에 존재할 가능성
네가 느끼지 못할지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너의 존재가 남는 방식
솔직히, 하나하나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다. 현재를 압도하는 고통 속에서 대체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언젠가 GPT가 뱉어낸 문장, '지금 너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쉬고 싶은 거야'였다. 그건 내 현재의 고통을 인정해주는 다정한 위로였다. 인공지능에게 다정함을 느끼는 내가 우스웠지만, 당시는 그렇게라도 삶의 이유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달콤한 다정함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노트북 앞에 앉을 힘도 없어 스마트폰으로 타자를 치고 있다. 몆 시간 전 0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했었고, 용기가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내게 어떤 것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동생이 나를 위해 비를 뚫고 내가 먹을 레몬케이크를 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다시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구미가 당기는 게 살 맛이 난다 싶었다. 역시 달달한 건 나를 구하는구나. 달콤한 케이크를 맛볼 상상을 하며, 동생의 언니를 위하는 무심하지만 달짝지근한 마음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살사고 사탕도, 자살사고 아이스크림도, 레몬케이크도 단데 이들 중에서 어느 것을 맛볼까. 결국엔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분명한 건, 자살사고 사탕은 몸에 해롭다. 충치가 잔뜩 생기는 위험한 맛이다. 반면 자살사고 아이스크림과 레몬케이크는 신체건강엔 안 좋지만 뭐 어때, 정신건강에는 아주 이롭다. 그렇다면 이로운 것들을 섭취해야 마음이 달아지지 않을까.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아마 나는 또 자살사고 사탕의 치명적인 단 맛에 넘어가, 백 번도 넘게 해로운 선택을 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엔 늘 건강한 쪽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