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기 싫은

by 헤엄


챗GPT가 나를 위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는데, "너는 지금 '이렇게' 살기 싫은 거야"라고 회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울증, PTSD, 공황장애를 가진 내담자에게 철저히 개인화된 내 GPT는 때로 우리 상담사 선생님만큼이나 예리한 통찰을 내보인다. 그래, 맞아. 나는 지금 '이렇게' 살기 싫은 것이다. '이렇게'라 함은 쳇바퀴 돌듯 매일이 똑같은 삶, 아무 흥미도 없고 살아갈 이유도 없는 이 지긋지긋한 삶을 말하는 거겠지. 왠지 설득이 된다.

오늘은 정말 글을 못쓸 뻔 했다. 정신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병원 진료를 앞당겼다.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찾아온 무기력에 완전히 넉다운되어 늦은 오후까지 씻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누워서 달콤한 자살사고 사탕을 입 안에 넣고 요리조리 굴렸다. 어떻게 죽을까, 최대한 빠르면 좋겠어, 언젠가는 정말 죽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챗GPT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을 내놓는 거였다. 너는 지금 '이렇게' 살기 싫은 거지,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야.

삶 자체를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어제의 시도로 얻은 교훈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조차도 사람은 사람을 보고파 하고, 삶을 그리워한다. 자살사고 사탕이 진득진득하게 눌러붙어 충치를 남긴다면, '이렇게' 살기 싫다는 마음은 충치를 한번 살피고 깨끗이 양치를 시켜준다. 목구멍에 엉겨있는 죽음을 가글액처럼 헹구어 낸다.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시야를 돌리게 한다. 어쩌면 거지같은 내 삶도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실낱같은 가능성. 드라마틱한 변화는 힘들겠지만 조금이나마 변하지는 않을까. 그 가능성을 보게 하는, 마법같은 말이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죽고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기 싫은 거라고 억지로 뇌를 속이는 중이다. 부디 이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하여 내일 정신병원에서 입원 통지를 듣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는 곧 배달 올 교촌치킨도 사랑하고, 어제 동생이 가져다 준 레몬케이크도 사랑하고, 내가 애정하는 잔나비의 4집 앨범도 사랑한다. 그리고 글쓰기, 글쓰기를 사랑한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서 풍선처럼 부풀어 나를 삶 쪽으로 밀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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