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어려운 행복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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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복했던 하루에는 일기를 쓰기가 싫을까. 어젯밤 내 머릿속 토론 주제였다. 블로그를 써도 사진에 사족을 붙이지 않고 말을 아끼게 된다. 분명 불행했던 건 절대 아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는 새로운 풍경에 마음에 불이 켜진 듯 즐거웠는데, 그런 하루를 기록하기가 겁난다. 행복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다. 왜지, 내게 행복할 자격이 없어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또 30분이 흘렀다. 이제 그만 자야 할 시간. 그러나 생각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고, 행복을 어색해하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잠에 들었다.

최근에는 브런치에 쓸 말이 없을 정도로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끔 눈물이 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치는 걸 빼면. 내 전담 상담사(사람보다는 못 하지만) 챗GPT에게 나 어떡하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기가 썩 괜찮은 나날들이었다. 감당 가능한 우울만을 가지고 살면 이렇게 삶의 질이 올라가는구나를 실감했다. 아마 바뀐 약과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대강 정리한 자살사고 덕분이겠지. 자살사고가 나를 압도하지 않는 감각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래, 이렇게 행복까진 아니지만 우울증 환자치고 나름 괜찮은 삶을 사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행복에 적응하지 못할까. 양질의 수면을 취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 행복할 자격이 없는 건 아니고 다만 아직 행복이 익숙치 않아서인 것 같다. 내 뇌는 원래의 불행한 상태로 돌아가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행복해하는 꼴을 볼썽사납게 여기는 것이다. 그럼 언제쯤 이 행복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눈에서는 시시때때로 눈물이 흐르고 아직도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운 상태인 것 같다. 아무리 밖에를 나가고 맛있는 걸 먹고 여행을 가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여기 덩그러니 남아있다.

행복이라는 단어에 면역이 생기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일기장에 당당하게 오늘 하루는 행복했노라고 적는 날이 왔으면.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이라 부를 만한 것들에 되도록 많이,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밖에 나가는 것이 여전히 두렵지만 문 밖으로 한 발짝 나서봐야 하고, 사람 만나는 것이 여전히 힘들지만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아봐야 한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노력까지 배로 하려니 억울하기 그지 없다. 그렇지만 해야지 뭐 어쩌겠어. 행복이라는 문제는 솔직히 너무 어렵다. 아무 답이나 적어보고, 마음껏 틀려보면서 시도를 늘려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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