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나의 힘

by 헤엄
meizhi-lang-BseRkOz8S1w-unsplash.jpg


얼마 전 가볍게 피검자로 참여한 연구에서 자아상 검사라는 걸 했다. 양쪽 중 자신의 모습에 더 가까운 이미지를 300개쯤 고르는 검사였는데, 결과가 가관이었다. 우울, 불안, 분노는 백분위가 하늘을 찌르는 반면, 긍정, 매력, 신뢰, 유능감, 따뜻함은 고작 1%대였다. 내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다른 지표들은 그래,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데 분노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나는 결단코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화가 나면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내 탓으로 돌려왔기에,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생소했다.

상담에서 그 이야기를 하니, 선생님께서는 그 검사에서 화가 꼭 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표적이 나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자기혐오라면 내 전문이니까. '남들처럼' 살지 못하고 정신병원도 겨우, 상담도 겨우, 하다 못해 잠 자고 씻고 먹는 일상적인 것까지도 겨우겨우 하는 내가 갈수록 미워진다. 물론 머리로는 남의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내 속도대로 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자꾸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채찍질하고 모질게 대한다. 벌써 30회기나 상담을 받았는데도 고치기 어려운, 오래 전부터 굳어진 습성이다.

사실 내게는 분노의 대상이 하나 더 있다. 내 주 양육자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에게 PTSD를 선물한 엄마다. 나는 아동에게 좋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렇게 표현하기까지도 참 오래 고민했다. 여전히 엄마와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가 가깝기에, 나를 우울증에 빠뜨린 엄마를 마음 놓고 미워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엄마를 향해야 할 분노는 곧 내게 떨어지곤 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를 두고 엄마는 세 살짜리 아이같다고 했는데, 그 말을 나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퇴행에 대해 찾아보고 미숙한 나를 미워하기 위해 며칠 간 애썼다.

아직 내 마음이 따르는 시선 역시 엄마의 시선이다.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은 지극한 사랑이 묻어있는 동시에 폭력적이다. 정상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르기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양면성을 알면서도 오랜 습관 탓에 내게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 남들과의 비교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 뿐이고, 그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울이나 자살사고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 패턴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 내게 남은 과제인데, 솔직히 아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참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이제 나를 향한 분노와 엄마를 향한 분노를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상담을 시작하던 올해 봄에는 스스로가 너무 작아 보여서 이대로 점이 되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외부를 향해야 할 가시를 내 안으로 세운 결과였다. 그때의 나를 지금 너대로도 괜찮다며 안아주고 싶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화내는 지금의 내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필요하겠지. 잘못한 것은 네가 아니라고. 그러면 분노를 나를 지키는 힘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을 찬찬히 배워가고 싶다.

이전 05화사주를 위한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