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서는 인간을 한 그루의 나무로 본다고 한다. 세상에 두 발로 뿌리내린 순간부터, 싹을 틔워 키를 키우고, 꽃이 진 자리에 과실이 맺힌 다음, 다시 자신이 나고 자란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 이 거대한 순환 속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다음, 다음 단계를 향해 가는 존재이다.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자란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도, 혹한기에도 나무는 버텨내야 한다. 그렇게 운명지어져 있다. 신은 실존의 문제에 그리 관대하지 않아서, 성장을 멈추고 말고를 결정하는 중대사를 한낱 미물에게 맡겨둘 순 없다고 일찌감치 결론지었다. 가혹하게 구는 대신 경험이라는 자양분을 허용하기로 한다. 몇 차례의 가뭄과 장마를 지나온 기억, 그 힘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한다. 사실 삶은 추위에 떨다 말라붙은 이파리 너머로 곧 움틀 봄을 겨눠보는 일의 연속이다.
봄이 있으면 겨울도 있고, 겨울 다음은 반드시 봄이다. 지금 죽도록 행복하다가도 내일 부는 바람이 내 모든 행복을 쓸어가서 하루 아침에 죽도록 불행해질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더 행복해질 가능성도 있다. 좋은 계절의 중턱을 지나는 중이라면. 그럼 이 시기는 얼마나 지속되나, 마찬가지로 미지수다. 오래 이어질 수도, 눈 깜짝할 새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른다. 그러나 계절은 돌고 돈다는, 간단한 자연의 섭리는 늘 예외 없이 적용된다.
가끔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것 같을 때 이 섭리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불행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는 그저, 지금이 나의 때가 아닌 거라고. 내가 대단한 잘못을 했거나 근본부터 틀려먹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싫어하는 계절을 맞닥뜨렸을 뿐이구나. 그럼 나는 작년 겨울을 떠올리며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마음 온도를 좀 덥혀볼 수 있다. 그리고 얼른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며 내 몫을 하는 거다, 차근차근.
살기 지칠 때마다 점을 보고, 사주에 기대는 데에는 아마 이런 사연이 있는 듯하다. 나 또한 그런 류의 인간임을 지금에 와서야 수긍한다. 겨울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