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두려운

by 헤엄
windah-limbai-wNitEZGI0qM-unsplash.jpg


왜 좋아하면 두려워질까. 학교생활을 너무 잘 하고 싶어서 학교 가는 게 두렵다. 고심 끝에 결정한 진로가 간절해서 진로 생각만 하면 죽고 싶다. 오늘 상담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더니, 무서워서 떨고 있는 마음 뒤에는 사실 그만큼 그 일을 바라고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왜 나는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경계할까. 마음껏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바보같이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대체 왜 이런 마음의 습관이 생긴 걸까. 나도 편하게 사랑하고 마음을 쏟고 싶다.

따지고 보면 나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연락을 더 하면 상대가 내게 질릴까 봐 다가가지 못했다(이런 걸 회피형이라고 하나보다). 과제를 잘 해내서 칭찬을 받으면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다음에도 잘해서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스스로 부과한 책무에 시달렸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혹시 내게 실망할까, 나를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돼서 절대 먼저 연락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게 내 성격 문제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마음의 습관이 이렇게 잡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름의 전략이 있었던 것 같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좋아하는 것은 위협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내 안의 방어기제가 자동으로 발현된다. 이건 아니야, 이렇게 좋은 상태는 내게 과분하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배신당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나만의 생존법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마음껏 좋아해도, 심지어 미워해도 되는 대상에게조차 예전에 쓰던 낡은 생존법이 자동으로 나온다. 새로운 생존법을 익혀야 하는 시점이다. 이 작업이 현재의 내게 숙제로 남아있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죄가 없다. 그 마음을 잘 지켜주고 가꾸는 것이 오늘 상담을 통해 새로 세운 목표다. 나도 두려움 없이 삶을,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그들과 가까이 관계맺고 싶고,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테두리 안에 속해 있고 싶다. 그러려면 역시 연습만이 답이다. 숱한 관계에도 뒤엉켜보고 사건에도 휘말려보면서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좋아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얻으면 된다. 정면으로 부딪혀 보겠다는 지금의 결심은 너무 미약하고 힘이 없지만, 긍정적인 경험들이 오늘 온 눈처럼 쌓이고 쌓여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전 03화공황장애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