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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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상담자와 대면하는 첫날. 긴장 80%, 설렘 20%를 가지고 상담 장소로 향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일찍 출발한 탓에 10분을 라운지에 있는 의자에서 대기했다.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다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새로운 상담자는 카운터에서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맞아 상담실로 향했다. 역시 상담 전공자답게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계셨다. 형형색색으로 수놓인 니트조끼를 입고 계신 상담사 선생님은 적어도 우리 엄마 뻘은 되어보였다. 익숙하게 문을 젖혀 열어주시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들어가자마자 간단한 안내를 받고 상담윤리 규정에 관한 서약서와, 상담 기간 동안 자살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나서는 기나긴 호구 조사가 이어졌다. 심리검사 결과는 나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상담에서 다루지 말자고 하셨다. 대신 정신과에 언제부터 다니기 시작했는지, 어느 정신과의 누구에게 진료받는지(조금 당황했다), 입원은 언제 어쩌다 했는지, 대학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은 있는지, 상담은 언제부터 왜 받기 시작했는지 등 종합적인 것들을 물으셨다. 그리고 내 대답을 종이에 하나하나 받아 적으셨다.

내 오랜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잘못된 양육 방식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자라왔고, 그리하여 PTSD를 얻게 되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니 선생님께서는 짧게, '힘들었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상담에서는 과거를 헤집기보다 현재의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말과 함께. 나도 내가 중점이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내게 오랫동안 쉴 곳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니 그럼 다음 상담에서 같이 고민해보자고 하셨다. 2회기 상담도 같은 요일 같은 시간으로 잡고, 50분이 조금 안 되어 상담을 마무리했다.

첫 상담을 마친 소감은 글쎄, 내가 너무 말을 아꼈나하는 생각이 든다. 질문하신 것에만 꼬박꼬박 대답하고 내 속내는 잘 털어놓지 않았으니, 꽤 방어적인 내담자였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첫 만남이 너무 어렵다. 눈 앞에 있는 사람과 라포를 쌓고 깊이 있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이 들까. 그럼에도 계속 가보는 마음이 필요하겠지. 분명한 건, 새로운 상담자는 꽤나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순전히 내 감이다. 사람에게 곧바로 정을 주지만 말을 걸지는 못하는 내 습성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음부터는 두 번째 만남이니 덜 어렵지 않을까. 그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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