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건 빨리 끝날까. 사실 1년 반을 함께했으니 빠른 편도 아니지만. 너무 좋아서 시간이 반으로 접힌 듯 흘러갔다. 오늘은 장장 31회기나 이어온 상담의 마지막 날이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기어이 울고 말았다. 관계에 대해 물을 때 나는 약해진다. 조건적인 사랑만 경험했던 내게 상담 관계라는 새로운 차원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는 그동안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내 마음을 선생님의 입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고, 더 나중에는 스스로 알아차려 말로 내뱉을 수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말문이 막힌 채 가만 있어도, 목을 조르고 손목을 그어도, 혼나지 않았다. 그곳의 다정함이 깃든 문법으로는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문장이 쓰일 뿐이었다. 그 문장을 나는 가슴에 안고 살아볼 수 있었다, 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반을.
선생님과 비대면으로 만났던 작년을 제외한, 올해 1년을 4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분기에는 처음 손목을 그었고, 그래서 색연필을 샀으며, 정신과에 갔다. 2분기에는 선생님과 상담실 밖으로 나가 내가 나를 신고했다. 3분기에는 정신병원에 다녀온 뒤 한동안 잠잠하던 자살사고가 극에 달했다. 4분기에는 자살사고를 정리하고 상담 종결을 맞이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상담실에서의 장면 단위로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께서는 힘든 시간을 건너와 준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도 맞지만. 내 손목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손을 잡고 119까지 함께 가주고, 당신의 '우울 시기' 이야기를 들려준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였더라면 해내지 못했던 일들이다. 꼭 기억해 주시기를.
대면 상담 첫 회기가 떠오른다. 어색함을 삼키기 위해 가식적으로 웃고,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생글생글 미소짓던 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웃는 대신 울기 시작했다. 상담실에서 뽑아 쓴 휴지의 양을 생각하면 나무야 미안해가 절로 나온다. 선생님의 흑갈색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그 힘이 내 얼음장같은 마음을 녹여, 나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그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온전한 이해였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는 나날들 속 일주일에 한 번 심폐소생같은 하루. 나는 이제 자가호흡을 할 수 있다.
종결 선물로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이미 내가 알고 사랑하던 시집이었는데, 펼쳐 보니 내가 알던 의미와 다르게 읽혔다. 예전, 질주하던 나는 산책하는 사람이 되기를 꺼렸다. 방향을 잃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소롭게 여겼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이 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실컷 멈추고 서성거리고 있는 지금, 나는 어떤 색깔일까. 어떤 색깔이든 상관 없다. 그저 나로서 충분하니까. 선생님께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게 알려주신 소중한 진리다. 그리고 종결 뒤에 남은 것. 이 문장들을 가지고 또 살아봐야지, 살아내야지. 시간이 흐르고 인연이 닿아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참 고마웠노라고 얘기해야겠다. 그 말은 아무리 더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