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에게 하는 말

by 헤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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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시작점이 모호하다. 성급히 내게 깊은 상흔을 남긴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가려다, 존재조차 몰랐던 트라우마에 걸려 크게 넘어진 적이 있다.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억지로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 일들을. 오늘, 상담사라는 보호자와 동행하여 내 과거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발걸음을 기록하고자 글을 쓴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첫 회기 기록지를 쓱 훑어보시더니, 엄마 이야기를 우리 지난 시간에 덜 하지 않았냐고 운을 떼셨다. 이어 엄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를 훈육하고 체벌했는지 물으셨다. 여기까지는 몇 번이고 읽어 거의 외울 지경인, 엄마가 어린 나를 대했던 방식을 적어둔 문서 내용을 줄줄 읊으면 돼서 어렵지 않았다. 내 이야기는 여느 불행한 가정이 그러하듯 익숙한 레퍼토리였고, 선생님께서는 그것들을 종이에 빼곡이 적으시면서 "힘들었겠어요"를 거듭하셨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네..."하고 선생님의 펜촉만 바라보았다.

그 다음 스텝부터는 조금씩 난이도가 올라갔다. 부모님은 내게 어떤 사람인지 한 문장으로 말해보라고 하셨는데,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라서 당황했다. 아빠는 유쾌하지만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사람. 엄마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지만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사람. 그리고 그 상처가 우리 사이의 벽이라고도 말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 내가 상담 목표를 엄마와의 정서적 거리두기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꾸 그 상처를 건드려 내게 접근하려 하는데, 그럴수록 나는 가시를 더 뾰족하게 세워 엄마를 밀어낸다. 우리는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부모님의 가족관계와 우리 가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다가, 선생님께서는 초등학교 때를 짚으셨다. 우리는 함께 엄마가 나를 옆에 앉혀두고 쉬지도 못하게 매를 들어가면서 가르치던 장면을 보고 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집에서 쉬어본 기억이 없었다. 대학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만화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머리가 하얘진 기분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내게 집은 휴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고 다그쳐야 했던 공간이었다. 그건 아마도 지금의 내가 집에서조차 온전히 쉰다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과 연관이 있겠지.

선생님께서는 종이컵을 초등학생인 나, 휴지곽을 엄마라고 하셨다. 저 큰 휴지곽 앞에서 종이컵이 얼마나 무서웠겠냐면서. 그리고 지금 성인인 내가 그때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딱 다섯 마디만 선생님과 번갈아가면서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힘든 걸 너 스스로 알아줬으면 해.", "정 힘들면 학원이라도 등록해 볼 수 있어. 억지로 참지 않아도 돼." 그리고 울었다. 묵묵히 견디고 버티는 것만이 미덕이라 여기는 그 아이가 처음으로 무식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불쌍했다. 그건 어쩌면 어린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마음.

그렇게 50분이 흐르고, 다음 시간에는 중학교 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이상하게 선생님과 함께라면 스스로 트라우마라 품고 있던 기억의 색채가 바뀌는 듯하다. 회상 속의 나는 여기저기 치여 우울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데, 여기에 현재의 내가 비상요원으로 투입된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너는 그럼에도 잘 해내고 있다고 지지해준다. 내 과거는 지나치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자책거리도 못 된다. 왜 그러지 않았냐고 다그칠 수도 없다.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으니까. 말 그대로,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봐주는 느낌이다. 이 따뜻한 색채를 오래 가져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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