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아보카도

by 헤엄
kris-tian-FQsTqe65fzg-unsplash.jpg


내 진로는 언제나 동경과 함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때 한창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이슈였다. 나의 꿈 스케치북에 외교관이 될 거라고 커다랗게 써서 가져가니 선생님께서 너무 다정하게 칭찬해 주시는 거였다. 그 다정함을 동경해 나는 초등교사로 꿈을 바꿨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덕에 내 꿈은 중등교사가 되었다. 그러다 교육 개혁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동경해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와서는 한 판사의 에세이를 읽고 홀딱 반해 로스쿨 진학을 꿈꾸었다. 법학통론 C+에 의해 금방 좌절되었지만.

그러니까 이제는 확실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경에 의해 진로를 정해도 되는지. 지금 내가 동경하는 이들은 나의 치료자인 상담 선생님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상처를 치유해주는 그들을 선망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나는 상담사가 되겠다고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에 발을 밟혀 넘어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꿔본 적 없는 꿈이라 나조차도 당황스럽다. 이 경로가 맞는 걸까. 무엇보다 일대일 대면을 부담스러워하고 모임에서 거의 말 없이 리액션만 하는 내가 상담이라니. 나중에 적성에 안 맞다고 뛰쳐나오진 않을까.

그런 사람 치고 벌써 대학원 지원서 초안을 완성했다. 내 성향이 그렇다. 미정 상태를 싫어하고 확정 상태를 추구한다. 이 확정 상태가 깨지는 순간, 나에게는 치명타가 날아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순간들. 스레드에서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학 이론을 발견하거나, 동기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해외 학회에 참석한 사진을 확인하거나, 나와 관심분야가 겹치는 친구가 각종 대외활동으로 빼곡히 채운 포트폴리오를 구경할 때. 그럴 때 동경 아보카도에 숨은 불안이라는 거대한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러고 있어도 되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동경 아보카도의 과육만 섭취하고 싶은 지금, 내게는 미정도 아니고 확정도 아닌 '잠정' 상태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 지금의 나처럼 넘어져 있는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것은 동경으로 얻은 것이 아닌, 내가 직접 뒹굴고 깨지며 배운 내 마음. 이번만큼은 동경이 전부가 아니라 동경이 몇 퍼센트 들어간, 나머지는 내 목표와 이상으로 채운 열매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용을 갖추어 단단하게 숙성시키고 싶다. 대신 하던 동경은 계속해야지. 동경 아보카도의 담백한 과육을 맛볼 때까지.

이전 09화종이컵에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