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반가움에 손 흔들면서도 다른 쪽 손으로는 내게 남은 것들을 꼽아보는 습성이 있고,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꾸준히 크리스마스를 싫어해 왔다.
아침저녁으로 걸칠 외투가 필요해질 즈음부터 캐럴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듣곤 했었다. 디데이를 세어주는 앱에다 예쁜 트리 사진으로 크리스마스 항목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자습실 캘린더의 12월 25일에 커다랗게 동그라미 치던 때부터, 내 온 신경은 이미 동그라미의 날로 와 있었다. 왜 이렇게 촌스러운 조명을 썼냐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나는 항상 지하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귀갓길을 우회하여 아파트 단지 전체를 빙 둘렀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도 기대 비슷한 걸 했던 것 같다.
기대해 왔다. 그리고 언제나, 실망해 왔다. 온갖 거리장식이며 캐럴, 들뜬 공기는 크리스마스의 전유물. 12월 25일이 지나자마자 그 모든 것들은 신데렐라 마법이 풀린 듯 의미를 잃는다. 24일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이름이 붙지만, 26일에는 아무 이름도 없다. 나에게 성탄절은 상실. 숨 막힐 듯한 설렘을 뒤덮는 하얀 허무. 파도에 부서진 모래성. 녹아 없어짐. 곧 창고나 쓰레기통 둘 중 어디로 처박힐 운명의 대형 트리를 바라보며 그런 이미지들을 하염없이 연상하는 거였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할수록, 뒤에 올 공허를 제정신으로 버텨낼 자신이 없어진다. 내가 그렇게 약해빠진 인간임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은 건 몇 번의 12월 25일을 유령처럼 넘기고 나서다. 언젠가부터 나는 일부러 캐럴을 찾아듣지 않았다. 기대해봤자 실망할 거야. 남들이 행복하다고 해서 나도 행복해야 할 이유는 없어. 나에게는 그럴 자격도 없어. 이불 속을 파고들며 나는 몇 번이고 유령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유령이 되어서, 내 깜깜한 생을 날았다. 생 전체가 마치 빛 한 줄기 없는 지하 같았다.
그 익숙한 공허를, 또 한번 버텨내기 위해 쓴다. 산타에게 내가 빈 소원은, 부디 크리스마스 유령이 되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기를.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는 불문율의 반대편은 없으니, 연말연시만 되면 어김없이 나를 휩쓸어 가는 감정의 파고에 다만 익숙해지기를. 산타가 유령의 소원도 들어주려나. 올해는 너무 많이 울어서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내년에도 눈물 총량의 법칙에 의해 나는 같은 양의 눈물을 흘리겠지. 얼른 닦아내고 다 잊은 듯 반가움에 손 흔들고 싶다. 다른 쪽 손은 잠시 모아두고.